근현대사 2권

참혹했던 비극의 역사

1948년 제주 4·3사건

1946년 10월 1일 대구 폭동 사건

[별지 1] 1948년 4·3사건 당시 제주도
[별지 2] 조선공산당이 찍은 위조지폐
[별지 3] 1947년 3·1발포 사건 당시 제주북초등학교 주변

남조선 노동당(남로당)은 남한의 단독 선거(1945.5.10)를 방해하여 제주도의 공산화는 물론 대한민국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계획을 수립, 1948년 4월 3일 02시를 기해 제주도 내 12개 지서를 습격하여 불을 지르고 행정관서를 장악하였다. 제주 ·사건은 이후 1954년 9월 21일까지 6년 6개월 동안 계속되었고,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길고 가슴 아픈 비극의 역사였다.

제주도는 천혜의 선물이요 아름다운 낙원이다.

제주도는 우리나라 육지(목포)에서 약 140km 떨어져 있으며, 동서로 73km, 남북으로 32km, 섬 전체 넓이는 약 1,850km²이며, 남한 전체의 약 2%에 해당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드문 천연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관광명소로, 우리나라의 자랑거리요 천혜의 선물이요 아름다운 낙원입니다. 제주 태생 도민들은 대체로 선량하여 때묻지 않은 순박함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순박한 제주도민들은 4·3사건 때 어떤 사상이나 이념을 가지고 좌로 우로 가른 것이 아니었고, 피치 못할 시대적 정황 속에서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려고 밤이면 산사람들에게 본의 아니게 협조와 복종을 해야 했고, 낮이면 대한민국 백성으로 돌아와야 하는 이중고(二重苦)에 허덕였습니다. 당시 산사람들을 따라 산으로 올라간 주민들은 ‘곧 인민공화국이 세워지니까 2-3개월만 고생하면 된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는데, 산에서 죽는 사람이 계속 늘어나고 상황이 악화되나, 여기서 죽느니 차라리 가족들 앞에서 죽겠다며, 집으로 돌아가는 자가 많았다고 합니다(1999.9.12. MBC 방영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1회 제주4·3사건).

6년 6개월 간 밤낮으로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 극한 고통 속에서 제주도 유사 이래 가장 많은 도민들이 다치고 죽어 갔으며, 오래도록 고통 속에 신음하였고, 제주도의 아름다운 산천은 무참히 짓밟혀 아물기 힘든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야말로 참혹했던 비극의 역사였습니다. 제주도민들 가슴에 응어리진 그 천추만대의 한(恨)을 누가 씻어 주며 무엇으로 그 보상을 다 할는지… 생각할수록 원통하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4·3사건의 쓰라림을 몸소 체험한 제주도민을 직접 찾아가 만나 보니, 모두가 4·3사건이 왜곡되고 진실이 은폐 되어 있는 현실을 개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후손들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도록 하기 위해 증언이나 서명을 부탁하면, 처음에는 거북하게 생각하고 거절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63년이나 지났는데도 4·3사건의 그 진상이 아직도 속 시원히 풀리지 않은 까닭에, 제주도민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어떤 위압감에 눌려 아물지 않은 상처와 눈물과 한(恨)을 안고 있는 듯하여, 실로 쓰린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어둡고 슬픈 역사라 할지라도, 진실 밝히기를 꺼려하여 침묵으로 외면하거나 회피하면서 흘러가는 세월에 막연한 기대를 걸고 있다면 큰 잘못입니다. 심각한 왜곡과 편향으로 잘못 인식된 역사를, 더 늦기 전에 곧게 펴는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사건을 체험한 세대가 모두 세상을 떠나기 전에, 진실이 영영 묻히기 전에 역사를 사실대로 밝히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막중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훗날 아무것도 체험하지 못한 우리 후손들은, 왜곡된 역사의 대가를 우리가 겪은 그 이상으로 가혹하게 치를수도 있는 것입니다. 진상규명의 최우선 작업은, 이 사건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서 무엇 때문에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를 밝히고, 그 역사적 사실만은 정직하게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나라의 앞길을 가로막는 지난날의 어둡고 부정적이고 답답했던 마음들이 하나 둘 밝아지고 긍정적이고 통쾌한 마음으로 변화될 것이며, 그로 인해 우리 후손들은 마음이 하나 되어 나라의 밝은 미래를 펼쳐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제주 4·3사건은 민중항쟁이 아니다.

국내의 여러 단체에서 제주 4·3사건을 연구한 책들이 쏟아지고 있으나, 너무 좌편향적인데다 민중항쟁이라고 말하는 이가 많습니다. 신상준 박사(대구대 총장 역임)가 만 9년 동안 제주 4·3사건을 연구한 끝에 발간한 <제주도 4·3사건 Ⅰ~Ⅴ>(제주문화, 2010)이라는 저서와 제주산업정보대에 재직했던 고문승 교수가 퍼낸 <제주 사람들의 설움>(신아출판사, 1991)과 같이 올바른 시각으로 역사를 되짚어주는 서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긴 고통이었던 제주 4·3사건, 그에 대한 폭넓고 전문적인 연구에 이 책이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오늘 날 대한민국이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흘린 고귀한 피의 터전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 중에서 제주도민이 흘린 피의 희생은 매우 큰 것입니다. 실로 제주도민의 고귀한 희생은, 6·25전쟁에서 나라를 지킬 수 있었던 한줄기 소망의 빛이었고, 자유민주주의 건설의 위대한 토양이 되었으며, 오늘날 부강한 대한민국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제주 4·3사건은 남로당에 의해 일어난 가슴 아픈 비극의 역사였다.

제주 4·3사건을 진압하다가 전사한 9연대장 박진경 대령을 비롯해, 이 사건을 진압하면서 순직한 군인 186명, 경찰 153명, 우익 인사 1,673명, 중상모략으로 억울하게 죽어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제주도민들… 그들의 영혼을 생각하면서, 반드시 그들을 위로해 주시고 그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그 자손 대대에 모두 보상하여 주시기를 머리 숙여 기도합니다. 이제 그분들의 애국혼을 여기 새기어, 부디 제 마음속의 무거운 빚을 조금이나마 갚고 나라사랑에 이바지할 수 있기만을 소원합니다.

역사적 사실은 결코 시대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해석에 있어 여러 의견이 나올 수는 있으나 실체적 진실까지 왜곡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강자(승자)편에서 역사적 진실 자체를 왜곡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역사는 더해서도 안 되고 빼서도 안 되며 정확한 사실 그대로 밝혀져야 합니다. 그 순간에 역사는 현재 속에서 놀라운 생명력을 발휘하며, 현재를 곧게 비추어 주는 선명한 거울이 되며, 미래를 향해 올바른 방향을 힘차게 외치는 나팔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왜곡 날조된 역사는 필연코 우리와 후손들을 나약하게 하고 병들게 하여 나라의 장래를 암담하게 만듭니다. 과거 역사를 사실대로 진단하지 못한다면 앞을 못 보는 장님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있는 국토, 내부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념적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더더욱 거짓 없는 역사의 보존을 위해 사실을 왜곡 없이 기록하는 일과 젊은 세대들을 위한 올바른 역사 교육이 강력히 요청되는 것입니다. 국사를 정직하게 사실대로 왜곡 없이 기록하고 이야기할 때, 그것만이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어 참된 애국심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국가(國家)란 만족의 커다란 집입니다. 나라 국(國)에 집 가(家), 국가는 실로 민족 대식구가 모여 사는 영원하고 광대한 집입니다. 이 나라에 사는 백성들은 저마다 대한민국의 한 가족 한 식구인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라고 하는 것은 상황과 필요에 따라 입었다 벗었다 하는 옷가지 같은 것이 아니고, 절대로 떼어내 버릴 수 없는 내살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백성과 국가는 일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디 이 책을 읽는 대한민국 백성 모두가 뜨거운 민족혼으로 조국의 앞날을 늘 생각하고 염려하며, 나아가 일사각오(一死覺悟) 애국애족의 일념으로 나라를 지키신 진실된 애국자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