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역사 현장에서 결정적인 순간들을 직접 목격한 저자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45년간 모아 정리했던 조각들을 철저한 현장답사와 생생한 증언을 토대로 집대성한 근현대사 이해의 길잡이!”

“뼈아픈 과거를 기억할 줄 모르는 사람은 과거를 되풀이하게 된다. 슬기로운 사람은 경험 속에서 지혜를 배우고 지혜로운 민족은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는다.” (철학자 산타아나)

근현대사 1권

1876년 강화도 조약부터 1945년 8·15 해방까지

구한말 - 일제 강점

[별지 1] 전국적으로 일어난 3·1독립운동(1919.3.1~4.30)
[부 록] 일제 시대 망국민족의 한(恨)을 노래한 전통 가요
[부 록] 대한민국 건국(建國) 대통령 우남(雩南) 이승만 박사(1875.3.26~1965.7.19)

구한말 조정은 뿌리 깊은 당파싸움과 세도정치 속에서 나라의 부국 강병에는 전혀 힘을 쏟지 않았다. 일제는 그 틈새를 휘젓고 들어와 국론을 분열시키고, 마침내 1910년 8월 29일 강제합병으로 우리나라의 주권을 송두리째 빼앗았다. 공산주의는 일제시대라는 고난의 역사를 틈타 확산되기 시작했다.

근현대사 2권

참혹했던 비극의 역사

1948년 제주 4·3사건

1946년 10월 1일 대구 폭동 사건

[별지 1] 1948년 4·3사건 당시 제주도
[별지 2] 조선공산당이 찍은 위조지폐
[별지 3] 1947년 3·1발포 사건 당시 제주북초등학교 주변

남조선 노동당(남로당)은 남한의 단독 선거(1945.5.10)를 방해하여 제주도의 공산화는 물론 대한민국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계획을 수립, 1948년 4월 3일 02시를 기해 제주도 내 12개 지서를 습격하여 불을 지르고 행정관서를 장악하였다. 제주 ·사건은 이후 1954년 9월 21일까지 6년 6개월 동안 계속되었고,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길고 가슴 아픈 비극의 역사였다.

근현대사 3권

1948년 10월 19일 여수 14연대 반란

여수 순천 사건

[별지 1] 여수 순천 사건의 주동자 김지회·홍순석 사살 장소(1948년 4월9일)
[별지 2] 빨치산 총사령관 이현상의 아지트와 그의 최후(1953년 9월17일)
[별지 3] 1948년 10월 19일 여수 순천 사건 진압
[부 록] 민족 중흥의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 

여수 순천 사건은 제주 ·사건 진압을 위해 출동 준비 중이던 여수 14연대에서,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을 받은 인사계 지창수 상사와 김지회 중위와 홍순석 중위의 주도로, 좌익 남로당원 50여 명과 여수 인민위원회 600여명이 일으킨 반란 사건이다. 여수는 8일만에, 순천은 4일 만에 국군에 의해 진압되었으나, 반란군과 그 동조하는 무리에게 여수에서 1,200명 양민과 순천에서 1,134명 양민이 학살 당하는 엄청난 희생이 있었다.

근현대사 4권

1950년 6월 25일

잊을 수 없는 6·25 전쟁

[별지 1] 북한군의 불법 남침기(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별지 2] 6·25전쟁 단계별 전개도(1950.6.25~1953.7.27 : 3년 1개원 2일)
[별지 3] 낙동강 방어선(1950.8.4~9.15)
[별지 4] 인천상륙작전(1950년 9월 15일)
[별지 5] 유엔군의 북한지역 최대진출선(1950.10.25~12.3)
[별지 6] 중공군의 침투 경로 및 1·2차 공세(1950.10.25~12.3)
[별지 7] 흥남철수작전 일정과 철수 방향(1950.12.15~24).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당은 선전포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기습 남침을 감행하였다. 전쟁개시 불과 3일 만에 북한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점령하였고, 국군 6개 사단 4만 4천명이 전멸당했다. 6·25전쟁은 1953년 7월 27일 밤 10시 휴전협정 되기까지, 3년 1개월 2일 동안 우리민족에게 가장 뼈아픈 냉전 시대의 비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