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은 포로 상태로 이어지나 기억은 구원의 비밀이다”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말라”

“Forgetfulness leads to exile, while remembrance is the secret of redemption.”
“Forgive, but remember.”

– 야드 바쉠 홀로코스트 박물관 –

세계 열강의 각축장이 된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

구한말 이후 오늘날까지 고요한 아침의 나라 대한만국은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 가운데 최대의 격동기를 뚫고 전진해 왔습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그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역사는, 감히 필설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난의 가시밭길이었습니다. 세계열강의 각축과 일제의 수탈과 압제, 해방 이후 좌,우익 대결의 혼란, 6.25전쟁의 참화, 반복되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 대한민국은 그야 말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칠흑 같은 흑암과 혼돈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토록 불우했던 약소민족 대한민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평화를 사랑하며 본심이 선하고 착한 백의민족(白衣民族)이었습니다. 순박하고 순진하기 그지 없는 우리 민족은, 오직 나라가 잘되어야 백성이 잘된다는 일념(一念)과 허리를 졸라매는 근검절약으로 마침내 부강한 나라를 이룩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은 하늘에서 비춰 주신 한 줄기 소망의 빛을 붙잡고 신통하게도 그 거친 역사의 격랑을 헤치고, 마침내 민족 본연의 기개를 드높여 전 세계 선망의 대상으로 우뚝 솟아올랐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위대한 민족사적 대업을 완수하고, 세계를 선도하는 일류국가가 되어 새로운 시대적 정진을 이루어야 할 중차대한 역사적 분기점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확한 역사의 인식과 전수입니다.

역사란, 지난 날 오랜 세월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세계나 국가 민족 등이 겪어 온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변천의 과정이나 중요한 사실과 사건의 자취를 말합니다. 분명 역사는 과거를 토대로 현재를 거쳐 미래로 부단히 거대한 물결을 이루며 흘러 나아갑니다. 현재의 역사는 과거 모두 역사의 결과물이므로, 과거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현재를 정확히 보게 하고 동시에 정확한 미래의 건설을 가능케 합니다. 세계를 선도해 갈 대한민국의 찬란한 미래를 건설하고자 할 때, 가장 시급한 것은 바로 과거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그것에 대해 공정(公正:공평하고 올바름)을 기하는 것입니다.

 

 

역사 기록은 사실 그대로 기록하는 것

역사 기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실제 있었던 그대로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날조하여 기록하는 것은 바른 역사관(歷史觀)이 아닙니다. 자기 견해와 입장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역사적 상황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지 않고, 주관적으로 치우쳐서 어느 한 부분을 과장하거나 부풀려 기록하고 의도적으로 빼 버리는 것 또한 바른 역사관이 아닙니다. 우리는 역사를 기록할 때 양심을 속여서는 안 되며, 양심에 화인(火印)맞아서 거짓말하는 자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옛 성인들의 말처럼 양심의 악을 깨닫지 못하거나 아예 양심이 없는 사람은 참된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역사는 살아 있는 양심을 가지고 사실 그대로 기록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후손들이 그 역사를 좌나 우로 치우침이 없이 객관적으로 읽고 또 기록해 나가도록 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일입니다.

과거의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하는 민족은, 결단코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며 새로운 역사의 창조적인 주역이 되어 전 세계를 밝혀 나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민족이 바로 유대 민족입니다. 이스라엘 ‘야드 바쉠 홀로코스트 박물관’ 전시실 2층 동판에는 “Forgetfulness leads to exile, while remembrance is the secret of redemption.” (망각은 포로 상태로 이러지거나 기억은 구원의 비밀이다.)라는 문구가, 그리고 기념관 출입구에는 “Forgive, but remember.”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말라.)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뼈아픈 역사를 기억하지 않으면 다시 비참한 멸망의 상황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유대인의 깊은 민족적 참회와 깨달음, 그리고 미래에 대한 각오를 엿볼 수 있습니다.

 

기억하라(remember), 생각하라(consider), 그리고 물으라(ask)

옛날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120세로 운명하기 직전에 가나안 입성을 앞둔 제 2세대들에게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라고 준엄하게 명령하였습니다. 이는 과거 역사를 회고함으로써 미래 역사를 전망하라는, 유언과도 같은 메시지입니다. 기억해야 할 ‘옛날(the days of old)’과 생각해야 하는 ‘역대의 연대(the years of all generations)’에 대한 언급은, 현존하는 역사에는 분명한 시작과 뿌리가 있음을 알려줍니다. ‘기억하라(remember), 생각하라(consider), 물으라(ask)’라는 이 세 가지 명령은, 우리 후손들에게 역사에 대한 교육이 반드시 그리고 중단 없이 계승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일깨우고 있습니다. 역사 교육을 통해 우리 후손들이 자신들의 뿌리를 찾고, 아비가 설명해 주고 어른들이 일러 주는 역사적 진실과 심원한 경륜을 배움으로써, 우리 민족은 비로소 나라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찾게 될 것입니다. 정직하고 성실한 역사 교육이야말로, 만세에 빛나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참된 원동력과 생명줄이며, 향후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과제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은, 대한민국 백성이라면 반드시 그 실상을 바로 알아야 하고 영원히 기억해야 할 역사적 이정표입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의 암울하고 처량했던 식민 통치와 수백만의 목숨이 희생된 6.25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기억해야 있는 사람은 이미 80세가 넘었고, 그 이후 세대는 대부분 그때의 비극을 알지 못하거나 옛날이야기 정도로 가볍게 여기고 무관심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대사는 지나치게 왜곡되어 차마 눈을 뜨고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편향되고 좌경화되어 버렸습니다. 심하게 편향되고 좌경화된 물결이 홍수처럼 밀려오고 있는데, 이것은 대한민국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도 있는 무서운 것임을 온 국민이 깨어 직시해야 합니다. 역사를 왜곡시켜 놓은 채 이기적이고 단편적인 주장들로 국론이 분열된다면, 모래 위에 지은 집이 풍랑에 쉽게 무너지듯이, 아무리 최고로 발전한 물질문명을 가진 나라라도 순식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격동기 그리고 6.25 동족상쟁

저는 대한민국 격동기의 현장을 직접 체험한 산 증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해방 이후 고향 이북에서 공산당에게 공산주의 교육을 받았고, 그 실상 또한 낱낱이 목격했고 실제로 경험했습니다. 월남(越南)전에 이미 레닌(Vladimir Lenin)의 <국가와 혁명>,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의 <자본론>, <공산당 선언>등을 교재로 공산주의 사상 교육을 철저하게 받았었고, 이러한 교육과 체험을 통해 공산주의의 허구성과 치명적인 한계를 누구보다도 정확히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1917년 11월 7일, 레닌의 주도로 볼셰비키 러시아 혁명을 승리로 이끈 공산주의는 1991년 12월 31일 완전 붕괴되어, 약 75년 만에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것은 공산주의가 이론은 그럴싸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론대로 실현되지 않는 허구임을 보여준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자유와 번영,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이렇게 허무하게 붕괴될 수 있단 말입니다? 공산주의는 당 간부를 비롯한 특권층만 잘살고 교육적 혜택을 누리는 독재 체제요, 공산주의가 들어간 나라마다 무자비한 살상으로 피바다를 이룬 참혹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이미 역사의 심판을 받았고 온 세계가 내다 버린 쓰레기같이 된 이론을 아직도 붙잡고 있는 이들이 많은 것을 보면, 참으로 통탄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소책자를 통해 현 세대가 전혀 체험하지 못한 을미사변, 을사늑약, 한일합병, 대구 10월사건, 제주 4.3사건, 여수 순천사건 등을 상세하게 밝히고, 무엇보다 공산주의가 개인과 민족에게 미치는 심각한 파괴력과 그에 따른 폐해를 분명하게 보여 주기를 원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가장 암울했던 현대사를 통해, 나라 없는 설움이 어떤 것인지, 또 나라를 빼앗긴 비참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모두에게 일깨워 주고 싶습니다. 저로서는 최선을 다해 현장을 방문하여 눈으로 확인하면서 마지막까지 증언자들을 만나 많은 도움을 받고, 그들의 증언을 정성껏 녹취하고 재차 확인하였습니다. 나름대로 공을 들였으나 아직 미흡하고 불완전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역사적 진실을 후대에 왜곡 없이 전달해야 한다는 소박한 뜻으로 책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섬기는 교회에서 국가의 국경일이나 절기, 목요일마다 꾸준히 해온 구국(救國) 강연 원고들과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대하여 45년간 꾸준히 연구하며 정리해왔던 조각들을 한 곳에 모아 조그만 결실을 보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북에서 공산주의의 허구성을 깨닫고 1948년 월남하여 춥고 배고프던 차에 통위부 후방사령부 국방경비대에 입대하여, 당시 군대의 상황을 누구보다 피부로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국방경비대에서 먼저 입대한 군인들이나 하사관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의 실상과 공산주의의 허구성을 설명하곤 하였습니다. 그때의 국방경비대 사령관은 송호성 준장이었는데, 그는 여수 순천 사건 20여 일 전인 1948년 9월 말에 저를 선도하겠다고 불렀습니다. 그는 두 시간 가까이 북한 공산주의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보고 대화하는 가운데 저를 위하는 척하면서 “지금은 공기가 좋지 못하니 당분간 말조심하라”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송호성 사령관의 태도를 보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6.25때 인민군에 의해 서울이 점령당하자, 남하하지 않고 인민군 여단장이 되어 국군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1950년 7월 4일 대남방송을 통하여, 국군병사들과 장교와 삼천만 동포들에게 자기를 본받아 인민군과 빨치산이 되어 “총부리를 돌려 인민의 원수 미제와 매국노 이승만 괴뢰도당을 타도하라”라고 부르짖기까지 했습니다. 또한 1948년 12월 보안법이 발표된 후 갑자기 부대의 많은 군인들이 탈영하였으며 그 대다수가 지휘관들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남로당에 가입하였던 빨갱이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6.25가 발발했고, 저는 인민군과의 치열한 전투를 계속하면서 밀리고 밀려 남하하게 되었습니다. 곳곳마다 공산당의 만행으로 처참하게 학살 당해 나뒹구는 시체들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였습니다. 전쟁이 얼마나 무서우며 공산당이 얼마나 잔악한지를 깨달을 수 있었으며,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고 이 지구상에서 공산주의는 없어져야만 한다는 것을 온 몸으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남하하던 중 지리산 전투에서 인민군의 총격으로 다리에 부상을 당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계속되는 저리고 아픈 총상의 통증은, 일평생 저에게 나라가 얼마나 귀중한지를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나라없는 개인이 존재하지 않으며 역사없는 나라 존재하지 않는다.

저는 이미 오래 전에 목회 일선(一線)에서 은퇴하고 어느덧 85세가 다 되어 일생의 황혼기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나라가 또 부른다면 다시 전장에 나가리라 하는 마음의 충정은 변함이 없습니다. 나라를 사랑하고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것이,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이고 참된 구국(救國)입니다. 조국을 위해 목숨바쳐 일하는 군인, 경찰, 공무원들, 노동자들, 남이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대한민국의 안위를 노심초사하는 이름 없는 진실한 애국자들이 많이 있기에,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든든하고 후손들의 미래는 희망찹니다.

나라 없는 개인은 존재하지 않으며, 역사 없는 나라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곧 우리 각 사람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제 나라의 역사를 모른다면 누구도 자기 정체성을 올바로 세울 수 없고, 그 개인의 앞날은 물론 나라의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역사에 대한 정확하고 올바른 인식이 곧 애국심의 참된 발현이며, 앞으로도 대한민국이 세계를 선도하고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는 첩경(捷經)입니다. 저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마땅히 알아야 할 역사를 사실대로 전해 주어야만 한다는 사명감으로 이 책을 집필하였습니다. 부디 온 국민이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나라 사랑의 뜨거운 애국심으로 불타올라, 대한민국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위대한 나라로 만들어 가는 찬란한 횃불들로 쓰임받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근현대사 저자 서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