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 시리즈 1권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으로 본

창세기의 족보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 20대 족장의 족보

1. 주요 내용

‘옛날’을 기억해야 할 이유

모세는 40년 광야 생활을 지나 가나안 입성을 눈앞에 두고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는 고별 설교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남긴다. ‘옛날’과 ‘역대의 연대’는 호랑이 담배 피던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아담 타락 이후 애타는 심정으로 인간 역사에 끊임없이 개입하면서 뜨거운 사랑을 베풀어 오신 하나님의 섭리의 기록이다. 그 섭리에 따라 불굴의 의지로 경건한 길을 지켜간 믿음의 조상들의 이야기다. 광야에서 가나안을 바라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옛날’을 기억해야 했듯이, 오늘날 광야 교회에서 신령한 가나안,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도 ‘옛날’은 되새기고 배워야 할 메시지다.

‘족보’의 재발견

‘낳고, 낳고’가 반복돼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창세기의 족보는 바로 그런 ‘옛날’ , ‘역대의 연대’를 핵심적으로 압축한 기록이다. 인간과 전 우주를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구속(救贖) 경륜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역사다. 창세기는 2300년의 긴 세월에 걸친 방대한 역사를 10개의 족보에 담아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각 족보에 새겨진 이름 하나하나를 깊이 음미해야 한다. 조선왕조 5백년을 가장 짧게 줄인다면 ‘태정태세문단세…’로 시작되는 왕들의 이름 스물 일곱 자일 것이다. ‘세종’이라는 한 단어 안에 그의 성격과 업적과 시대상이 다 담겨 있는 것이다. 창세기의 족보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 20대의 조상들의 이름과 성경 기록을 통해 한 사람 한 사람에 숨어 있는 영적 의미를 재발견하게 한다.

구속사는 ‘분리’의 역사다

창세기는 가인, 함, 이스마엘, 에서 등 경건한 족보의 본류에서 이탈한 죄악의 족보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왜 그럴까. 그들의 족보는 바로 오늘날 나의 불신과 죄악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는 두 개의 길이 모두 열려 있다. 그래서 족보는 끊임없는 ‘분리’의 역사다. 아픔을 무릅쓰고 죄악을 부단히 분리해내는 과정이 개인적, 역사적으로 함께 이뤄져 온 것이다. 그런 개인적, 역사적 ‘분리’의 전형(典型)이 되는 인물이 아브라함이다. 이 책의 주인공을 꼽는다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다. 바로 그에게서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가 시작된다.
 

2.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

아담과 라멕은 56년, 노아와 아브라함은 58년간 동시대에 살았다

이런 자세로 창세기의 족보를 자세히 살펴보면 깜짝 놀랄 일들이 발견된다. 뜬구름 잡는 것 같던 ‘옛날’이 생생한 스토리로 되살아나 오늘 날 ‘나의 이야기’로 꿈틀거린다. 만화같이 느껴지던 아담 이후 조상들의 수명이 단 1년의 오차도 없이 들어맞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930세를 향수한 아담과, 777세를 향수한 아담의 9대손 라멕(노아의 아버지)는 56년간 동시대를 살았다. 950세까지 산 노아는 11대손 아브라함과 58년 동시대를 살았다. 모두가 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 밝혀진 사실들이다.

노아 방주를 지은 기간은 120년이 아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신학자, 목회자들이 ‘120년’이라고 가르쳐 온 노아 방주 건축기간.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방주 건축기간은 100년에 미치지 못한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을 하신 때(창세기 6:14)는 노아가 세 아들을 낳은(창세기 6:10)뒤의 일이다. 하나님은 “네 아들들과 며느리들까지 방주에 함께 들어가라”고 명령하셨다(창세기 6:18). 노아는 500세가 지나서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고(창세기 5:32) 홍수가 일어난 것은 노아 600세의 일이다(창세기 7:6,11). 간단명료하게 떨어지는 계산이지만 놀랍게도 이 역시 기독교 역사상 처음 논증된 사실이다. 그게 왜 중요하냐고? 마지막 때는 노아 때와 같고, 오늘날 성도는 모두 방주를 지어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인류 최장수 므두셀라가 죽은 해, 홍수가 일어났다

성경에 기록된 최장수(969세) 인물 므두셀라. 그의 손자 노아 때 홍수가 일어나 세상은 심판을 받는다. 그런데 이들의 연대를 따져 보면 므두셀라가 죽은 바로 그 해, 노아 홍수가 일어난 것을 알 수 있다. 므두셀라는 홍수에 휩쓸려 죽었을까. 아니다. ‘므두셀라’의 원어의 뜻은 ‘그가 죽으면 세상에 심판이 온다’이다. 그가 969세라는 인류 최장수를 기록한 배경에는 끝까지 심판을 미루고 회개를 기다리신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과 긍휼이 담겨있다.

아브라함은 데라가 죽은 뒤 갈대아 우르를 떠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처음엔 갈대아 우르를 떠났고, 두 번째로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이주했다. 사도행전 7장4절에는 “아브라함이 아비 데라가 죽은 후에 하란을 떠났다”고 기록돼있다. 그러나 연대를 맞춰보면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 75세고 데라는 145세다. 데라는 60년이나 하란에서 더 머무른 뒤 205세에 죽었다. 성경 기록의 오류일까. 그렇지 않다. 이 스토리에는 아브라함의 ‘분리’와 ‘결단’의 역사가 담겨있다.
 

3. 핵심 메시지

끊임없이 죄악과 욕심을 분리해 낸 믿음의 조상들을 통해 창세기의 족보는 이어져왔다. 그 족보는 ‘전세계의 구원을 위한 아브라함의 등장’을 알리는 구속사의 여명에 해당한다. 아브라함을 택하심으로 다시 시작된 구속사의 행진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시는 메시야를 통해 성취되고야 만다. 그 웅대하고 경건한 스토리가 바로 ‘옛날’이고, 실상 그것은 ‘옛날’이 아니라 오늘날! 지금! 바로 나의 이야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