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란 하루 (마 6:34, 약 4:13-14)
사람에게는 태어나자마자 ‘오늘’이란 하루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진주알같이, 깨알같이 고르고 고르셔서 그 하루를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하루의 가치와 귀중함을 깨달을 때, 최선을 다해서 그날을 붙잡고 살아야만 됩니다. 최선을 다하지 못하면 그 하루는 그 사람에게 없는 것입니다. 하루를 잃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창 1:5에 보면,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라” 하셨습니다. 이는 시간 흐름의 시발(始發)이요, 주야의 시작이며, 역사의 출발입니다. 이 과정을 밟아서 날이 가고, 달이 오고, 해가 바뀌며, 역사의 전진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하루가 여러분들에게 있습니까?
1. 인생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은 ‘오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루, 즉 ‘오늘’의 시간을 주신 것은 당신의 원하시는 기쁘신 뜻을 이루기 위함입니다(빌 1:13).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루하루의 시간은 자기의 유익만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위해, 나아가 오직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 드려야 합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의 것이며, 주를 위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롬 14:7-8).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이라고 하는 하루를 강퍅함으로써가 아니라,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주의 뜻을 이루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히 3:7, 4:7). 오늘 본문 마 6:34은 공동번역 성경에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잠 27:1에서도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라고 하였습니다. 눅 12:16-21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오늘’ 하루를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게 살지 못한 자는 ‘내일’에 대한 소망이 무의미합니다. 그래서 ‘오늘’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말하고 있는 사람이 지금 맞고 있는 날”입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의 선언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오늘’의 시간들이 연결되어 결국 ‘인생’이라는 장엄한 성을 쌓게 되고, 오늘이라는 이 하루는 그 성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천년의 세월도 분초에서 시작되며, 인생의 긴 여정도 따지고 보면 ‘오늘’ 하루하루가 쌓여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그 많은 시간 중에서 더욱 중요한 시간은 언제입니까? 바로 ‘오늘’이라는 시간이 아니겠습니까! 오늘이야말로 우리에게는 더없이 귀중하고 소중한 시간입니다. 왜냐하면, 내일은 엄밀히 말해 나의 날이 아닙니다. 내일 나의 삶이 어떻게 될지, 그것은 아무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인간의 생명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에 불과할 뿐입니다(약 4:14).
2. 하루를 잃어버린 자는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사람이 ‘하루’를 붙잡고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오늘이라고 하는 하루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 내가 더 성숙하고 지혜로 성장했으면, 우리는 오늘을 충실히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내일 세상에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습니다. 중국의 공자도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할 정도로 의미 있는 하루의 귀중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장로교의 창시자 존 칼빈은 사람의 삶에 대해서 “정신적으로는 내일 세상에 종말이 온다는 심정으로 살고, 현실 삶에서는 천년을 살 것 같은 진지한 마음의 자세로 지혜롭게 살라”고 했습니다. 이 같은 사람들은 인생을 놀고 유희하는 장소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루하루를 절대 그냥 보내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우리는 그러한 삶의 태도를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서도 “나는 주 안에 갇혀 있다” 할 정도로, 주님께서 주신 ‘하루’의 삶을 의미 있게 살았습니다. 여호수아는 믿음으로 하루를 쓰다가 시간이 모자라니 하나님으로부터 하루의 시간을 보너스로 더 받기까지 했습니다. 이들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신 하루의 시간을 붙잡고 놓치지 않은 승리의 사람들입니다.
3. 인생을 사는 동안 작은 죽음들을 조심하라
‘인생을 사는 동안 작은 죽음들’이란 우리 인생에서 순간순간 시간을 놓치고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날만 쳐다보다가 오늘을 놓치는 사람들은 순간순간 죽어 가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권위와 허황된 꿈을 좇는 헛된 정력의 낭비, 허송세월–이 모든 것이 자신도 모르게 나를 죽이고 있는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일생은 어느 한 날 갑자기 죽는 게 아닙니다. 손전등의 건전지가 점점 약해지면서 결국 빛을 잃듯이, 하루가 없는 사람들은 점점 생명이 꺼져 가다가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오늘을 소홀히 하며 살아가는 것은 매일매일 조금씩 죽어 가는 것과 같습니다.
가나안 정탐의 과정을 보십시오. 정탐꾼 12명 중에서 10명은 40일 동안 헛일을 했습니다. 믿음으로 귀하게 붙잡지 못한 결과로 정탐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신 시간만 다 놓치고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루에서부터 40일 동안 ‘하루’도 놓치지 않고 귀중하게 쓰고 붙잡았습니다. 그 결과로, 40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계산하여 40년 동안 광야 길을 걷는 가운데(민 14:34) 광야에서 다 죽음을 맞이하였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약속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결 론 : 어제는 한낱 꿈에 불과하며, 내일은 비전에 불과하지만, 살아가는 오늘은 매일매일을 행복과 꿈으로 만들며 모든 내일의 희망의 원천으로 삼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오늘이라는 하루! 뜻을 깨달아 이루어 드리는 믿음의 시간으로 충실하게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