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11:26)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창세기 11:26을 해석하는 견해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① 데라가 70세에 아브라함을 낳았다는 견해

② 데라가 70세가 되었고, 아브라함과 나홀, 하란을 낳기 시작했다는 견해 (현대인의 성경 등)

 

1) 세 아들들의 출생순서

창세기 11:26에서 데라의 세 아들 ‘아브람, 나홀, 하란’ 은 출생 순서대로 기록된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하란의 아들이었으며 (창 11:29), 나홀이 하란의 딸과 결혼했다는 점을 볼 때 하란이 가장 나이가 많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나홀은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 (창 22:23, 24:15)이라고 명시되어 있으므로, 데라의 세 아들의 출생 순서는 ‘하란 – 아브라함 – 나홀’의 순서이다.

글라슨 아쳐는 유대 학자 필로의 견해를 따라 사도행전 7장의 스데반의 설교를 근거로 데라가 70세에 하란을, 135세에 아브라함을 낳았고, 아브라함이 70세가 되던 해에 데라가 죽자 가나안 땅으로 옮긴 것으로 설명한다 (창 11:32, 행 7:4). 이 설명만 볼 때는 2번의 해석이 옳은 듯 보인다. 그러나 이 설명에 대해서 헨리 M. 모리스는 데라가 135세에 아브라함을 낳았다면, 아브라함이 100세에 이삭을 낳은 것이 기적이 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박한다. 무엇보다 이 설명은 왜 출생순서대로 기록하지 않고 아브라함, 나홀, 하란의 순서로 기록했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해답을 주지 못한다.

 

2) 출생순서대로 기록하지 않은 의미

신구약을 통틀어 단어의 순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신구약에서 예를 하나씩 들어보자면, 에서와 야곱을 함께 이삭의 자손의 의미로 언급하는 경우 출생 순이 아닌 영적인 의미로 순서를 바꾸어 기록했으며, 신약의 경우에도 ‘바나바와 바울’에서 바울의 사역이 발전됨과 함께 ‘바울과 바나바’라고 지칭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창 11:26)의 히브리어 원문은 이러한 모습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창세기 11:26의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낳았다’는 뜻을 가진 ‘얄라드’(יָלַד)에 “에트 아브람 에트 나홀 베에트 하란(אֶת־אַבְרָם אֶת־נָחוֹר וְאֶת־הָרָן)”이라고 연결하여 아브람, 나홀과 하란 사이를 ‘베’(וְ)로 구분하고 있다. 따라서 (창 11:26)을 직역하자면 “그리고 데라 칠십년을 살았고, 아브람과 나홀 그리고 하란을 낳기 시작했다(참고 – KJV: And Terah lived seventy years, and begat Abram, Nahor, and Haran”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데라가 70세에 아브라함과 나홀을 ‘낳기 시작했고’, 그리고 하란을 낳았다는 것으로서 출생 순서를 고려할 때 하란을 낳은 것은 70세 이전이며, 데라가 70세가 되었을 때 아브라함을 낳고 그 이후에 나홀을 낳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든 웬함이나 카일, 델리취, 헨리 M. 모리스와 같은 신학자들도 이러한 견해를 지지하고 있다.

 

3) 창세기의 구조적 측면

고든 웬함은 창세기는 10개의 족보(톨레돗)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족보(톨레돗)는 이전까지의 내용과 다음에 이어질 내용의 연결고리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창 11:10-32)의 족보는 노아의 홍수 기사와 아브라함으로 인한 새로운 역사를 연결하면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등장을 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창 11:26)의 ‘70세’는 아브라함과 연결해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4) 족보의 기능적 측면

성경의 족보는 언약의 계승과 구속사의 전진을 보여주며, 언약과 상관없는 자손들의 수명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이는 창세기 4장의 가인 계열의 족보에는 수명이 하나도 기록되지 않았지만, 5장의 셋 계열의 족보에는 자식을 낳은 나이와 향수한 나이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을 통해서 볼 수 있다.

따라서 (창 11:26)에서 ‘70세’를 특기한 것 역시 아브라함의 나이를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5) 스데반의 설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혹자는 데라가 70세에 아브라함을 낳은 것이라면, 스데반의 설교와 65년의 충돌이 일어나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는 본문의 단어를 조금만 연구해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창 11:32)에서 데라가 하란에서 205세에 죽었다는 구절에서 ‘죽었다’의 원어인 ‘무트’(מָוֹת)는 육적인 죽음 자체를 의미한다. 그러나 스데반의 설교에서 데라가 ‘죽으매’의 원어인 ‘ἀποθνῄσκω’(아포드네스코)는 육적인 죽음뿐 아니라 영적인 죽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고전 8:11, 15:31 등). 특히 스데반의 설교가 구약의 기록을 영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행 7:15-16 / 창 33:18-20, 50:13 – 세겜 땅의 구입자는 실제로 야곱이나 스데반은 아브라함이라고 말했으며, 세겜에 묻힌 것은 요셉인데 야곱이라고 표현했다), 스데반이 말하는 데라의 죽음 역시 영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독일의 보수 신학자 류폴드나 헨리 모리스 역시 이러한 견해를 지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데라는 70세에 아브라함을 낳았고, 가나안 땅을 향하던 도중 하란에서 지체했다. 데라 145세에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완전히 부정을 끊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으며, 하란에 남겨진 데라는 205세에 죽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