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들의 연대 계산법을 통해 본 아마샤 왕의 포로 기간
구속사 시리즈 제 4권 「신비롭고 오묘한 섭리」에서는 남 유다 제 9대 왕 아마샤의 통치 일대기를 다루면서 그가 ‘약 10년간 포로 생활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마샤의 포로 생활 기간이 왜 10년인지를 꼼꼼히 계산하기 위해서는 남북 열왕들의 연대를 계산하는 공식들을 총동원해서 복잡한 계산을 해보아야 한다.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은 서로 다른 연대 계산 방식에 따라 통치 연도를 기록하였으므로, 먼저 열왕들의 통치 기간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크게 (1) 즉위년 방식과 무즉위년 방식, (2) 니산월(아빕월; 출 13:4, 23:15) 기준과 티쉬리월(에다님월; 왕상 8:2) 기준, (3) 섭정과 공동통치의 세 가지를 이해해야 한다*. 성경에서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 각 왕들의 즉위한 시점은 보통 ‘상대국 왕 통치 OO년’ 형식으로 기록되었는데, 이를 ‘대조연대’라고 한다. 위 세 가지 형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통치 기간이 어떻게 계산되는지를 이해한다면, 아무리 복잡한 왕들의 연대라고 해도 정확한 연대를 규명할 수 있다.
* 구속사 시리즈 4권 “신비롭고 오묘한 섭리” 66-77쪽 참조
1. 아마샤의 즉위 연대
아마샤는 북 이스라엘 제 12대 왕 요아스 2년에 25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는데(왕하 14:1-2, 대하 25:1), 북 이스라엘의 요아스가 즉위한 것은 주전 797a년이었다. 북 이스라엘은 요아스 부터 즉위년 방식을 사용하였으므로, 이 당시에는 무즉위년 방식을 사용했다. 따라서 주전 796년에 아마샤가 25세의 나이로 남 유다의 왕으로 즉위한 것이다. 물론 니산월, 티쉬리월 기준에 따라 주전 797년으로 볼 수도 있지만, 후의 연구와 종합하면 더욱 확실하게 규명된다.
2. 아마샤의 포로 기간
아마샤는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교만하여져서 북 이스라엘의 요아스에게 시비를 걸며 침공하였다. 그러나 아마샤는 벧세메스에서 요아스에게 참패를 당한 후 북 이스라엘에 포로로 끌려가게 된다(왕하 14:11-14, 대하 25:21-24).
1) 아마샤가 포로로 끌려간 시점
아마샤가 포로로 끌려간 시점은 웃시야(아사랴)의 즉위 연대를 구함으로 알 수 있다. 열왕기 기자는 북 이스라엘 제 13대 왕 여로보암(2세) 27년에 웃시야가 왕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왕하 15:1). 여로보암 2세는 주전 793년에 즉위하였으며, 즉위년 방식으로 연대를 계산했으므로 여로보암 27년은 주전 767년을 가리킨다.
반면 역대기 기자는 유다 온 백성들이 ‘아마샤를 대신하여’ 16세였던 아마샤의 아들 웃시야(아사랴)를 왕으로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다(대하 26:1, 3). 이 기록은 주전 767년에 웃시야의 나이가 16세라는 것이 아니다. 이 시기를 계산할 수 있는 근거는, 북 이스라엘의 제 14대 왕 스가랴가 즉위한 해를 ‘아사랴(웃시야) 38년’(왕하 15:8), 이어 살룸, 므나헴의 즉위한 해를 ‘웃시야 39년’(왕하 15:13, 17)이라고 기록한 것이다(왕하 15:13). 앞서 보았듯, 여로보암 2세는 주전 793년에 즉위하여 주전 753년까지 41년을 통치하였다(왕하 14:23). 따라서 스가랴는 주전 753년에, 살룸과 므나헴은 주전 752년에 즉위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39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주전 791년으로, (왕상 15:1)에서 웃시야가 즉위한 해라고 기록한 주전 767년을 훨씬 지나가게 된다. 따라서 북 이스라엘의 세 왕의 즉위 시점은 웃시야가 섭정을 시작한 연대를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며, ‘아마샤를 대신하여’는 역대하 25:27-28에 기록된 대로 아마샤가 살해당한 시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샤가 포로로 끌려간 때를 의미하는 것이다.
열왕기 기자가 15:1에서 웃시야의 즉위를 기록한 것은 아마샤가 죽은 이후 단독 통치를 시작한 시점인 반면, 역대기 기자가 기록한 ‘아마샤를 대신하여 웃시야를 왕으로 세움’은 섭정을 시작한 시점이다. 따라서 두 본문은 아마샤가 주전 791년에 포로로 끌려가면서 웃시야가 섭정으로 남 유다를 통치했고, 아마샤가 죽은 이후에 웃시야가 즉위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웃시야는 주전 791년에 섭정으로 왕위에 올라 739년까지 52년간 통치하였다. 당시 남 유다가 즉위년 방식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웃시야의 52년 통치가 738년이 아닌 739년으로 마치는 것은, 섭정으로 시작하여 왕위에 오르는 경우에는 즉위년을 따로 계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 아마샤가 귀환한 시점
북 이스라엘의 요아스는 주전 797a에 즉위하여 16년을 다스리고 주전 781년에 죽었다. (왕하 14:17), (대하 25:25)에서는 요아스가 죽은 후에도 아마샤가 15년을 생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왕하 14:23)에서는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가 ‘아마샤 15년’에 즉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두 기록을 조화시켜볼 때 요아스의 죽음을 계기로 아마샤가 남 유다로 귀환하여 15년을 생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약 아마샤가 여전히 포로인 채로 남아있었다면 여로보암 2세의 즉위를 아마샤의 연대에 대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 이스라엘은 왕의 통치 연대를 기록할 때 니산월 기준 달력을 사용하였고, 남 유다는 티쉬리월 기준 달력을 사용하였으므로, 요아스가 죽은 주전 781년은 남 유다의 주전 782b/781년에 해당한다. 아마샤가 주전 767년까지 15년을 생존했다면, 주전 782b년에 귀환했을 것이다.
두 시점을 계산해볼 때 아마샤는 주전 791년부터 주전 781년까지 10년 동안 북 이스라엘에 포로로 끌려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종합해보면, 아마샤는 주전 796년에 즉위하여 792년까지 약 5년간 남 유다를 다스리다가 주전 791년 북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대패하여 포로로 끌려가게 된다. 포로 생활은 10년 동안 이어지다가 주전 781년에 여로보암 2세의 즉위와 함께 해방되어 남 유다에 돌아와 웃시야와 15년간 공동으로 남 유다를 통치하다가 반역한 무리들을 피해 라기스로 도망갔으나, 결국 주전 767년에 무참히 살해되었다. 아마샤는 29년 통치 기간의 1/3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포로로 유배되어 있다가, 포로에서 귀환한 이후에도 회개하지 않음으로 반역자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하는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