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집의 왕의 씨를 진멸한 여왕 아달랴
예수 그리스도 족보 제 2기(마 1:6-10)에서 생략된 인물 중 독특한 프로필의 소유자를 뽑자면 바로 ‘아달랴’를 들 수 있습니다. 남 유다 제 7대 왕인 아달랴는 유다 왕들 중 유일한 ‘여왕’이었으며, 북 이스라엘의 악한 왕을 대표하는 ‘아합’과 왕비 ‘이세벨’의 딸로서(왕하 8:18, 대하 21:6), 여호사밧(남 유다 4대 왕)의 며느리(대하 18:1)로 유다에 들어와, 남편 여호람과 그 자손들이 아합의 집처럼 우상을 숭배하고 악을 행하도록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 인물입니다. 더 나아가 아들 아하시야가 죽은 후에는 아들을 대신하여 자신이 왕위에 오르기 위해 유다 집의 ‘왕의 씨’를 진멸하였습니다.
1. 아달랴의 다윗왕조 진멸사건
(1) 유다 집의 모든 ‘왕의 씨’를 진멸
아달랴는 아들 아하시야가 북 이스라엘에 가서 갑자기 피살되자(왕하 8:29, 9:16, 27-28, 대하 22:5-9), 남 유다 왕권의 공백기를 이용하여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 유다 집의 ‘왕의 씨’를 진멸하였습니다(왕하 11:1, 대하 22:10). ‘왕의 씨’는 ‘왕위를 계승할 자격이 있는 아하시야의 모든 아들과 친척’을 가리키는 것으로, 아달랴는 이들만 제거하면 다윗왕조의 모든 씨 전체가 진멸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기의 친손자들까지도 무자비하게 샅샅이 제거한 것입니다. 여기서 ‘자손 계승’의 의미를 갖는 ‘씨’(히. 제라)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은 다윗 왕가를 완전히 멸망시켜 아합 왕가를 이루고자 했던 아달랴의 사악한 의도를 드러냅니다. 이는 왕이 되고자 하는 개인적 욕심에서 더 나아가 다윗왕조를 통해 여자의 후손(창 3:15)을 보내시려는 하나님의 크신 뜻을 가로막는 사악한 행위였습니다.
(2) 아달랴의 손에서 요아스를 도적하여 살리심
아달랴가 모든 왕손들을 죽이고 하나님의 섭리에 도전하는 상황 속에서, 여호람의 딸이자 아하시야의 누이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인 여호사브앗(여호세바)이 한 살 된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몰래 ‘도적하여’ 자신의 침실에 숨겨 죽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왕하 11:2, 대하 22:11). 이는 다윗의 왕손이 보존되어 여자의 후손이 오실 길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의 역사였습니다.
2. 아달랴의 비참한 최후
(1) 제사장 여호야다의 개혁
아달랴의 손에서 도적해낸 요아스를 6년 동안 성전에 숨겨 노심초사 보호해오던 제사장 여호야다는 “여호와께서 다윗의 자손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왕자가 즉위”하게 하기 위해(대하 23:3) 목숨을 걸고 혁명을 결단함으로, 다윗의 자손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한 씨 요아스를 마침내 왕위에 올렸습니다(왕하 11:4-12, 대하 23:1-11).
(2) 극악한 여왕 아달랴의 최후
6년 전 모조리 진멸된 줄 알았던 다윗의 씨가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보존되고 있었음을 목격한 이스라엘은 큰 감사와 기쁨으로 만세를 부르고 나팔을 불고 찬양을 하였고, 그제야 개혁을 알아챈 아달랴는 옷을 찢으며 “반역이로다, 반역이로다”라고 외치며 최후의 발악을 하였습니다(왕하 11:13-14, 대하 23:12-13).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고, 여호와의 전 밖, 왕궁 마문 어귀에 이를 때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왕하 11:15-16, 대하 23:12-15). 아달랴가 죽었을 때 온 국민이 즐거워하고 성중이 평온하였습니다(왕하 11:10, 대하 23:21).
아달랴와 결혼한 여호람의 통치 8년, 그 아들 아하시야의 통치 1년, 여왕 아달랴의 통치 6년 등 무려 13년 동안이나 아달랴의 악영향으로 온 나라에 우상숭배가 들끓는 절망상태에 빠져있었습니다. 남 유다로 시집온 후 평생을 사단의 하수인 노릇을 하면서 남 유다의 거룩한 등불을 꺼뜨려 흑암의 역사로 바꿔 버리려 했던 아달랴의 계획은, 제사장 여호야다의 개혁을 통해 철저히 무너졌고, 유일한 다윗의 후손 요아스를 통하여 새로운 소망이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결국 하나님의 괴롭히심을 받아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마지막 때도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세상의 거짓 통치자인 마귀와 그 하수인들이 멸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계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