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의 족보
가인이 놋 땅에 거하면서 ‘성’을 쌓은 것은 인간들끼리 힘을 모아 하나님의 간섭으로 부탁 독립해 보려는 의도였습니다. ‘놋’의 뜻은 ‘방황하는 자, 방랑자, 도망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은 그 후손들에게까지 그 죄악의 온상을 전수하는데 그 자손들의 이름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1. 가인의 후손들
1) 에녹: 바침 <봉헌된 자>, 개시, 선생
가인의 자손 에녹은 셋의 6대손 에녹과 동명입니다. 셋의 후예 에녹은 경건한 사람으로 믿음의 극치를 이룬 사람인 반면에 가인의 아들 에녹은 불경건한 자로서 에녹입니다. 에녹은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처음 얻은 인본주의의 첫 열매였던 것입니다 (창 4:16-17). 가인은 에녹이 인본주의적 가문의 성공을 위해 바쳐지기를 소원하는 마음으로, ‘바침’이란 뜻을 가진 ‘에녹’이라고 지은 것 같습니다 (창 4:16). 에녹의 이름의 뜻 <바침, 개시, 선생>을 통해서 볼 때,
① 가인은 도시를 건설한 후에 그 도시 이름을 아들의 이름대로 ‘에녹’ 이라 했습니다. 에녹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이 인본주의의 아성을 과시하는 데 바쳐졌습니다.
②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앞서 하나님과 함께하면서 누렸던 모든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전복시키고, 자기 뜻대로 살고자 혁신을 일으키는 일에 본격적인 ‘시작 <개시>’ 이 되었습니다.
③ 에녹은 하나님께 반역하는 불신과 배반을 가르치는 부정적인 의미의 전문적인 ‘선생 <시조, 원조, 조상>’ 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는 때때로 하나님 없는 시작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모든 시작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2) 이랏: 도망자, 도피자, 과시하는 자
이랏은 에녹의 아들로서 이름의 뜻은 ‘자기 자신을 과시하는 자’ 입니다. 온갖 범죄를 저지른 후,‘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우리가 하는 일을 하나님이 보지 못할 거야’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다’ 하는 자를 성경에서는 가장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 10:4, 14:1).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과 동기, 우리의 심장과 폐부까지 감찰하시고 우리의 생각을 낱낱이 살피십니다 (렘 17:10, 시 94:9, 잠 5:21). 현재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까지 살피시는 분이기 때문에 (시 139:1-3).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감출 수 없는 것입니다.
‘이랏’의 의미 가운데 ‘誇示[자랑할 과, 보일 시]’라는 것은 자랑해 보이되 사실보다 크게 나타내어 보이면서 스스로에게는 위안을 삼는 것 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공허합니까? (약 4:16). 우리의 자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갈 6:14). 하나님을 떠나 자기를 과시하는 인생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는 인생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므후야엘: 하나님이 흔적 없이 쓸어 버린 자
이랏의 아들 므후야엘은 ‘하나님께서 흔적도 없이 쓸어 버린자’ (창 4:18)라는 의미입니다. 므후야엘이 어원은 마하(쓸어 버리다, 지워 버리다)와 엘(하나님)의 결합으로서, ‘하나님이 쓸어 버리신 자’, ‘하나님이 이름을 지워 버린자’ 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 끔찍하고 저주스러운 이름입니다. 므후야엘의 삶을 알 수는 없지만 그의 이름에 사용된 ‘마하’ 라는 단어가 다른 곳에서 쓰인 용례를 살펴볼 때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었는지 대략 알아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므후’의 어원‘마하’의 기본적인 뜻은 가죽 두루마리의 잉크 얼룩을 해면 따위로 흡수시켜서 씻어 없애는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가죽에 묻은 얼룩 등을 지워서 없애듯이 개인의 이름이나 생애의 업적을 소멸시키거나, 나아가 한 국가의 존재 자체를 지워 없애 버리는 것은 무시무시한 심판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이 단어는 주로 범죄한 자에게 주어지는 무서운 심판과 형벌을 가리킬 때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노아 홍수 당시에 “…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창 6:7, 7:23),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 버리시니” (창 7:23)라는 말씀에서 ‘쓸어 버리다’가 ‘마하’라는 단어입니다. 이처럼 ‘마하’는 죄에 대한 심판으로 모든 것을 쓸어 버린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수많은 용례가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도시나 종족 등에 대한 철저한 파괴와 소멸을 가리키는 경우에 사용되었습니다(왕하 21:3, 삿21:17)
둘째, 사람의 이름이나 기억을 없애는 경우에 사용되었습니다 (출 17:4, 신 25:18, 삼상 15:2).
대표적인 경우가 아말렉 족속에 관한 기록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후손들에게 아말렉의 이름을 지워 없애서 기억됨이 없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름을 지워 없앤다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 가치를 없애는 무서운 심판의 선언입니다. 이상과 같은 두 가지 용례를 볼 때 ‘마하’라는 단어는 주로 하나님의 뜻에 도전하고 죄악을 범한 종족이나 도시, 개인을 멸절하는 하나님의 심판에 사용되었습니다.
4) 므드사엘: 지옥의 사람 혹은 하나님의 사람
므드사엘은 므후야엘의 아들로 (창 4:18), 그 어원을 볼 때 상반된 두 가지의 뜻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므드사엘’ (마트<사람>와 소올<지옥>)은 합성어로 ‘지옥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므드사엘의 생애가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고 세상의 욕심과 자기 욕망을 좇아 살아감으로 결국 죽은 자들의 세계인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둘째, ‘므드사엘’의 어원은 ‘마트’와 하나님의 이름 ‘엘’의 합성어로 보는 견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므드사엘의 아버지 므후야엘은 자식을 낳고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으로 지었을 것입니다. 므후야엘은 ‘하나님이 흔적 없이 쓸어 버린 자’ 라는 뜻입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의 뜻대로 자기가 성취한 모든 것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허무한 인생을 살면서, 자식만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평안과 축복의 삶을 살기를 소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므드사엘의 자식인 ‘라멕’ 이 가인보다 더 악한 살인자가 된 것을 볼 때 (창 4:23-24), ‘므드사엘’의 삶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지옥의 아들로서의 삶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결론
므드사엘의 이름처럼 인생들은 항상 두 가지의 삶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손에서 크고 존귀하게 쓰임을 받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지옥의 아들로 어둠에 사로잡혀 사단의 하수인 노릇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우리 인생의 앞길에는 언제나 상반된 두 가지의 삶이 펼쳐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신 30:15, 19).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와 우리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신 30:20)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삶이 될 때에 비로소 지옥의 아들이라는 의미는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3. 적용
1) 우리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떠났을 때 우리의 마음의 상태를 서로 이야기 해봅시다.
2) 나의 모습 가운데 있는 가인의 후손들의 모습들을 해결한 것이 있는지 애기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