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에서 노아까지의 족보 (1)
이제부터 살펴볼 아담부터 노아에 이르는 10대의 역사에는 인류의 타락과 심판과 회복이라는 일정한 주기가 두 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아담의 타락과 에덴에서의 추방, 가인의 살인으로 인한 아벨의 죽음 등 인류의 범죄와 심판이 셋을 통해 회복된 것이 그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범죄로 인해 죄악이 관영한 세대를 하나님이 홍수로 심판하셨으나 인류의 제 2조상으로 노아를 세워 새로운 역사를 회복한 경우입니다.
아담에서 노아까지의 족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은 에녹입니다. 가인의 족보에서 아담의 7대손 라멕은 그 행적이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된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셋의 족보 역시 아담의 7대손인 ‘에녹’을 중요한 인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에녹은 아담과 308년 동안 동시대에 살면서, 아담이 전하여 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음으로써 ‘죽음’으로 끝나는 인류의 운명을 깨고 하나님과 동행하여 최초로 죽지 않고 승천한 인물이었습니다 (창 5:21-24, 히 11:5).
아담에서 노아까지의 족보에서 특별한 부가 설명이 없는 족장들은 게난, 마할랄렐, 야렛, 므두셀라입니다. 비록 이들의 삶에 대한 특별한 설명이 성경에는 없지만, 이들이 장수한 것으로 보아 분명 신앙적이고 경건한 삶을 살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신구약 성경에서는 장수를 경건한 신앙과 관련된 하나님의 특별하신 복으로 수없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 4:40, 5:16, 6:2, 11:9, 12:25, 28, 22:7, 출 20:12, 왕상 3:14, 시 21:4, 55:23, 91:16, 잠 3:1-2, 7-8, 16, 4:10, 20-23, 9:11, 10:27, 16:31, 전 7:17, 8:13, 엡 6:1-3). (잠 3:1-2)에서는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 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악한 자는 그 수명을 반으로 짧게 줄이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 55:23).
아담부터 노아까지 10대의 족장들은 모두 장수하였습니다. 죽음을 보지 않고 365세에 승천한 에녹을 제외하고 9명 족장들을 장수한 순서대로 살펴보면, 므두셀라가 969세로 최장수 인물이고, 그 다음이 야렛(962세)이며, 순서대로 노아(950세), 아담(930세), 셋(912세), 게난(910세), 에노스(905세), 마할랄렐(895세), 라멕(777세)입니다. 7명이 900년 이상 살았습니다. 오늘날에는 볼 수 없는 놀라운 장수입니다. 그것은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경건한 자손들이 받은 하나님의 특별한 혜택이요, 이 땅에서 누린 최고의 축복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김의원 박사는 그의 저서 「하늘과 땅, 그리고 족장들의 톨레돗」에서 “장수의 복은 가인의 후예와는 달리 셋의 후예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특별하신 복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박윤선 박사도 창세기 주석에서 “경건(敬虔)과 장수(長壽)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라고 하면서 그들이 오래 살게 된 원인을 하나님의 경륜 때문에, 그리고 그 시대에 비교적 하나님을 잘 공경한 사실 때문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지금부터 창세기 5장에 나오는 독특한 족보 형식과 열 명의 인물들의 삶과 생애, 그리고 그들의 이름 속에 깃들인 영적 의미를 상고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구속 섭리와 경륜을 함께 헤아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아담 – 사람, 인류, 인간
아담의 어원은 앗수르어의 ‘아다무’에서 유래되었으며, 그 뜻은 ‘만들다, 생기다’입니다. 사람은 결코 조물주가 아니며 ‘창조물,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아담의 어원을 ‘붉다’라는 뜻을 가진 ‘아돔’에서 찾기도 하는데, 이것은 사람이 붉은 색을 띤 흙으로 지음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창 2:7, 3:19, 23). ‘흙’은 히브리어로 ‘아파르’로서 진흙이 아닌 ‘먼지, 티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없는 사람의 존재 근원은 흙먼지에 불과합니다(창 18:27, 욥 4:19, 33:6, 시 103:14, 전 3:20, 사 64:8, 고전 15:47).
(1) 아담은 9대손 라멕의 나이 56세까지 생존하였습니다.
(2) 에덴에서 있었던 영화로운 체험들을 증거하였습니다.
ㄱ.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움이 없던 세계임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창 2:25).
ㄴ. 에덴을 거니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대화를 나누었던 일을 들려주었을 것입니다 (창 2:15-16. 3:9, 10, 11, 17)
ㄷ.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만물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지었던 일들을 들려주었을 것입니다 (창 2:19).
(3) 아담은 에녹의 승천 57년 전에 930세를 향수하고 죽었습니다.
계산) 아담 이후 987 (에녹의 승천) – 930 (아담의 죽음) = 57년
2. 셋 – 대신한 자, 대체, 고정된 자, 기초 혹은 토대
아담과 하와의 첫 아들 가인은 악한 자에게 속하여 동생 아벨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아담과 하와가 가졌던 새로운 생명에 대한 소망을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가인은 여호와 앞을 떠나 나갔습니다(창 4:16). 이때 아담과 하와는 비통한 마음을 금치 못했을 것입니다. 아벨이 형 가인의 손에 처참하게 죽은 지 얼마 못되어 큰 아들 가인마저 신앙의 길을 버리고 떠났으니, 두 아들을 동시에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참으로 극심한 슬픔과 절망이 아담 가정을 어둡게 드리우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로서 셋을 주어 위로와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의 나이 130세에 낳은 셋은 아벨 대신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고, 넘치는 소망과 위로의 선물이었습니다.
셋의 어원은 히브리어로 ‘쉬트’로서 이것은 ‘세우다, 고정시키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벨은 그 이름처럼 허무하게 수(壽)를 다하지 못한 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셋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온전히 세워지고 굳게 뿌리내리기를 소원한 것입니다.
(1) 셋은 아담의 모양, 형상과 같은 아들이었습니다 (창 5:3).
(2) 셋은 하나님이 주신 ‘다른 씨’ 였습니다 (창 4:25).
(3) 셋은 메시아가 오시는 길을 굳게 하기를 소망하는 이름입니다.
(4) 셋은 아담의 죽음을 목격했고, 그 이후 에녹이 승천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3. 에노스 – 아담 (사람), 연약한 사람 (죽을 수 밖에 없는)
에노스의 어원은 히브리어로 ‘아나쉬’로서, ‘깨지기 쉽다’, ‘약하다’는 뜻입니다. 에노스는 인간이 전적으로 무력한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참으로 그것은 ‘숙명적인 연약성’입니다.
이것은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렘 15:18, 미 1:9)와 병들어 고통 가운데서 신음하는 죄악된 인류의 한계 상황을 나타냅니다. 에노스의 아버지 셋은, 아담 타락 이후 거세게 밀려 오는 죄악의 물결로 말미암아 이제 여호와를 찾지 않고서는 죄의 유혹을 도저히 이기며 살 수 없는 무력한 존재임을 절실하게 인식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의 이름을 그의 신앙 고백을 좇아 ‘에노스’라고 짓게 된 것입니다.
‘아담’과 같이 ‘에노스’는 고유명사로 사용될 수도 있고 ‘사람’을 가리키는 일반 명사로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에노스’ 그 이름은 아담이 타락한 이후 비로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던 ‘셋’의 입에서 나온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이름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1) 에노스 시대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창 4:26).
(2) 에노스 시대에 하나님을 믿는 바른 의식, 예배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창 4:26).
(3) 에노스는 스스로 구원하기에 무능하고 나약한 전 인류를 예표합니다.
4. 게난 – (뜻밖에) 얻은 아들, (광대한) 소유
게난의 어원은 히브리어로 ‘카난’으로서 이것은 ‘둥지를 만들다’, ‘보금자리를 마련하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연약성과 무능함을 깨달은 셋의 후예들은 에노스 때에 이르러 참다운 회개와 더불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신앙부흥 운동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게난 때에 드디어 신앙의 둥지를 틀고 보금자리가 마련되어 신앙의 정립이 이루어졌음이 ‘게난’의 이름 속에 암시되어 있습니다.
(1) 게난은 ‘뜻밖에 긍휼을 얻었다’입니다.
ㄱ. 그 구속의 사랑과 은총이 너무 크고 너무 높고 너무 깊어서 인간 편에서는 ‘뜻밖의’ 일입니다. 그 선물은 누구나 받을 수 있고, 받는 자에게는 두려움이 아니고 기쁨의 좋은 선물입니다.
ㄴ. 우리에게 구원 받을 만한 어떤 요소가 없기 때문에 ‘뜻밖의’ 일입니다. 무슨 자격이나 친분이 있어서 주신 것이 아니고, 전적인 은혜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받은 구원은 뜻밖에 얻은 기쁨의 선물, 영광의 선물, 가장 큰 선물입니다.
(2) 게난은 ‘광대한 소유’를 의미합니다.
5. 마할랄렐 – 하나님께 찬양, 하나님께 영광
마할랄렐은 ‘찬양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할랄’에서 유래한 명사 ‘마할랄(명성, 찬양)’과 하나님의 이름인 ‘엘’의 합성어로서, ‘하나님께 찬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찬양한다’는 것은 가사를 지어 곡을 만들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기리는 것으로, 아름다운 자연과 훌륭한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뜻합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한 분만이 진정한 예배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계 5:12, 19:1-5).
그러므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본격적으로 그 이름에까지 대두된 것은 당시 폭발적인 영적 부흥과 신앙 성장으로 하나님과 심히 가까워진 상태를 암시합니다.
아마도 에노스 때부터 하나님께 경배하는 공식적인 예배가 시작되었던 것이, 게난 때에는 경건한 성도들의 보금자리와 터전이 세워지고 마련되었으며, 마할랄렐 때에는 하나님께서 찬송이 충만한 예배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시고(시 22:3) 그 찬송으로 영광 받으시게 된 것 같습니다.
(1)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계 5:12).
(2) 찬양은 하나님의 능력을 일으키는 동력입니다.
(3) 찬양은 받은 은혜에 대한 감격적 고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