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와 세계사 여행 ② 페르시아
현대 지도에 녹아 있는 성경 역사
성경에서 ‘바사’는 세계사의 페르시아 제국을 가리킨다. 현대 지도에서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를 그려보면 이란, 이라크, 터키, 이집트, 아프가니스탄 등을 포함하여 24개국의 전체 또는 일부에 걸쳐 있어 그 광활한 크기를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이란은 지금은 비록 쇠락했지만, 한때 페르시아 문명의 중심지로서 최고의 문명과 권력을 자랑했던 역사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고레스 칙령이 발견된 하마단
에스라 6:2에 나오는 ‘악메다 궁’은 유대인들의 바벨론 포로 귀환과 성전 재건에 관련된 공간적 배경이다. 세계사에서 엑바타나(Ecbatana)에 해당하는 이곳의 현재 지명은 ‘하마단(Hamedan)’이다. 페르시아 제국을 이룬 아케메네스 왕조 다리우스 1세(성경의 다리오 왕)때 유대인들이 성전을 다시 짓던 중 사마리아 주민들의 방해로 성전 재건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이때 유대인들은 키루스 2세(성경의 고레스 왕)가 성전 건축을 허락한 ‘고레스 칙령’을 찾아줄 것을 다리우스 1세에게 부탁한다. 이때 고레스 칙령이 발견된 곳이 악메다 궁, 바로 하마단이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여름궁전이기도 했던 하마단은 사산조 페르시아가 멸망한 7세기 이후에는 이슬람 세계의 중심 도시로 성장했으며 2차 포로 귀환에 기여한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무덤을 포함한 여러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어 페르시아의 보물창고로 불린다.
다니엘, 에스겔의 무대였던 슈슈타르(수산성)
현대 지도의 슈슈타르(Shushtar)는 고대 페르시아의 겨울궁전 수산성에 해당한다. 유대 민족이 포로로 살았던 곳 중 하나로, 다니엘(단 8:2-5)과 느헤미야(느 1:1), 에스더(에 1:2-5, 4:8-17, 9:6)의 사건이 모두 이곳에서 일어났다. 수산성에 있을 때 다니엘이 본 환상에서 페르시아는 ‘수양’으로 묘사된다. 수양의 두 뿔은 메대와 페르시아를 가리키며, 두 눈 사이에 현저한 뿔이 있는 ‘수염소’가 나타나 이 수양을 짓밟는 것은 헬라 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페르시아 제국이 멸망할 것을 가리킨다. 실제로 페르시아 제국은 주전 331년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다리오 3세가 알렉산더 대왕에게 패함으로 멸망한다. 모든 세계사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속사적 섭리 속에서 진행되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한편,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남편 크세르크세스 1세(성경의 아하수에로 왕, 다리우스 1세의 아들)에게 나아가 하만의 모략으로부터 유대 민족을 구원한 사건과,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성에 대한 간절함으로 기도한 장소도 수산성, 즉 지금의 슈슈타르를 배경으로 일어났다. 현재 슈슈타르에는 다니엘의 무덤이 있으며 페르시아의 또 다른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현대의 ‘파크트에 잠시드’)와 엑바타나, 사데(현대의 ‘사르티스’)로 가는 길의 중심 역할을 했던 것이 수사에서 사르디스까지 건설한 2,703km에 이르는 왕의 대로 및 관개 수로 등의 유적으로 남아 있다.
키루스 1세에 의해 건국된 페르시아 제국을 ‘아케메니드 페르시아’(BC 550-330)라고 하며 이 제국은 키루스 1세의 손자인 키루스 2세(고레스) 때 번성기를 누리게 된다. 키루스 2세는 기원전 546년에 리디아를 점령하고, 539년에는 바벨론까지 점령한 후 칙령을 내려 바벨론에 끌려온 유대인들을 풀어주고, 귀향을 허가했고 예루살렘 성 재건을 위한 재정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느 2:9~3:32). 귀환을 원치 않는 사람들은 돌아가지 않고 이란에 남아 살 수 있도록 하였는데 당시 남은 자들은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란의 많은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이는 그가 속국의 종교와 문화의 자유를 인정하고 약탈이나 위협행동을 금지시키는 정책을 통해 제국을 다스렸기 때문이다.
페르시아 제국의 정책에 녹아 있는 구속사적 섭리
그 결과 고레스 왕은 역사상 여러 민족으로부터 칭송받는 왕이 되었다. 고레스는 ‘기름부음 받은 자’(사 45:1)라는 뜻이며, 바사 말로는 ‘태양’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일찍이 성경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고레스의 이름과 사역의 내용을 상세하게 예언하였다(사 44:28, 45:1-8). 그는 하나님의 ‘모략을 이룰 사람’으로 예비되어 바벨론을 멸망시켜 70년 만에 포로지에서 돌아올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도구로 쓰임 받았다. 그를 가리켜 이사야 44:28에서는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어 키루스 2세의 아들 캄비세스 1세 때 이집트를 정복하고, 다리우스 왕 때에는 동쪽으로 인도지역과 서쪽으로 그리스의 영토를 점령하여 흑해 무역권까지 장악하였다. 다리우스 왕 시대에 큰 제국을 통치할 수 있는 정치 시스템을 구축하였는데, 앞서 슈슈타르를 설명하며 언급한 도로 시스템과 후에 수에즈 운하의 기초가 된 이집트에 건설한 운하, 쐐기문자의 보급, 화폐와 도량형의 통일 등이 이에 해당한다. 다리우스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아하수에로)는 그리스와의 살라미스 해전과 프라타에아, 미칼레 전투에서 패전하고 BC 465년에 암살당하여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성경의 아닥사스다 왕)가 즉위했다. 이후 주전 458년에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의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의 인도로 2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지고 주전 444년에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마지막 3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졌다. 이후에 바사 제국은 셀류쿠스 장군이 세운 파르티아 왕조(BC 250-AD 226)를 거쳐 사산조 페르시아(AD 226-651)를 거치는 동안 632년 사산조 마지막 왕 야즈드게르드 3세가 이슬람 지도자 칼리드 이븐 왈리드(KALID IBN WALID)가 이끄는 아랍 기마부대의 공격에 패하여 역사의 막을 내리게 된다. 성경에는 오늘날 이란의 아케메니드 페르시아와 파르티아의 역사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은의 제국’ 페르시아, 은 본위 화폐제 실시
다니엘서의 예언에 의하면 페르시아 제국은 은으로 된 ‘가슴과 팔’(단 2:32)이며, 네 짐승 중에서는 ‘곰’으로 묘사되었다(단 7:5). 두 번째 짐승인 곰은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잇 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다고 나와 있다. 페르시아는 최초로 은을 화폐 단위로 한 징세제도를 실시한 나라였으며 곰의 입에 있는 세 갈빗대는 페르시아가 점령한 ‘리디아’(주전 546), ‘바벨론’(주전 539), ‘애굽’(주전 525) 국가를 가리킨다. 이를 입의 잇 사이에 있는 갈빗대로 표현한 것은 이 나라의 탐욕성을 나타낸다. 이러한 페르시아 제국은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귀환과 성전 재건에 관련하여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바벨론을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막대기로 사용한 것에 이어 페르시아는 약속된 70년의 기한이 차서 선민을 해방케 하는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때로는 왕을 감동시키고 그 정책을 이끄시며 모든 제국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와 구속사적 섭리임을 실감하게 할 뿐이다.
출처 : 참평안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