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계명 – “살인하지 말지니라” (출 20:13, 신 5:17)
출애굽기 20:13에서 “살인하지 말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히브리어 원문을 볼 때, 신명기 5:17과 동일합니다. 제 6계명부터 제 10계명에 이르는 다섯 계명은, 이전에 나오는 다섯 계명에 비해 훨씬 간결합니다. 또한 이 다섯 계명은 이웃과의 관계를 깊이 다루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첫 번째로 “살인하지 말지니라”라고 명령하신 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1. 제 6계명의 해석
‘살인하지 말라’라는 제 6계명에 담긴 근본 정신은, 모든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무엇보다 생명의 존엄성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참으로 살인과 살육이 가득해진 요즘, ‘살인하지 말라’ 하신 명령은 십계명의 중요성을 더욱 크게 실감하게 합니다.
⑴ “생명(生命)” / life
생명은 생물에만 있는 속성으로, 생물을 살아 있게 하는 힘입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창 1:20-31). 성경에서 생명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히브리어는 두 가지(하이, 네페쉬)이고, 헬라어는 세 가지(조에, 비오스, 프쉬케)입니다.
① ‘하이’: 살아 있는(living), 생존하여 있는(alive), 생명(life)
‘하이’는 ‘하야’(뜻: 살다)에서 유래했으며, 구약성경에서 약 500회 정도 사용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육신의 생명(삶)’을 뜻하며(신 28:66), ‘삶의 일정 기간’이나 ‘생애, 생활’을 가리키기도 합니다(창 27:46, 왕상 4:21).
② ‘네페쉬’: 숨쉬는 존재(breathing being), 영혼(soul), 생명(life)
‘네페쉬’는 ‘숨쉬다, 원기를 회복하다’라는 뜻의 동사 ‘나파쉬’에서 유래한 명사로, ‘호흡하는 존재(피조물), 영혼, 생명’ 등을 의미하며, 구약성경에서 약 750회 정도 등장합니다.
③ ‘조에’: 생명(life)
‘조에’는 신약성경에서 약 135회 정도 등장하며, ‘죽음에 반대되는 경우의 생명’, 즉 ‘살아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눅 16:25, 행 17:25, 롬 8:38, 고전 3:22, 빌 1:20, 약 4:14). 특히,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과 교통함으로써 누리는 축복된 생명(삶)을 뜻하며, ‘그리스도로부터 받는 새 생명’(요 1:4), ‘믿음으로 받는 생명’(롬 6:4, 고후 2:16, 엡 4:18, 요일 5:12), ‘죽음을 이기는 영생’을 가리킵니다(고후 5:4, 딤후 1:10).
④ ‘비오스’: 이생(this life), 생활(life)
‘비오스’는 일반적으로 ‘삶’, 즉 ‘생애’, 또는 ‘생의 기간이나 과정’을 나타내며, 후에는 ‘생계, 생업, 재산’ 등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비오스’는 신약성경에서 10번 등장하며, 주로 우리의 현재적 지상 생활(생명)을 가리킵니다(눅 8:14, 딤전 2:2, 딤후 2:4, 요일 2:16).
⑤ ‘프쉬케’: 목숨(life), 영혼·마음(soul)
‘프쉬케’는 ‘프쉬코’(뜻: 숨쉬다, 바람 불다)에서 유래했으며, 70인경에서 자주 나오는데, 주로 히브리어 ‘네페쉬’의 역어(譯語)로 사용되었습니다. ‘프쉬케’는 사람 개개인의 목숨(마 16:26, 막 10:45), 생명(요 12:25, 행 20:10)을 가리킵니다.
피조 세계를 동물계, 식물계, 광물계 등으로 분류할 때, 인간은 이 모든 피조 세계에서 확실히 월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창 1:26-27).
(2) “살인(殺人)하지 말라” / You shall not murder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앞에서 살펴본 대로 귀중한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살인하다’는 히브리어 ‘라차흐’로, 본래는 ‘산산조각이 되도록 부수다’라는 뜻입니다.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권세는 오직 하나님께만 있으므로(신 32:39. 삼상 2:6, 마 10:28, 롬 4:17, 히 11:19), 사람의 귀중한 생명을 함부로 살상하는 것은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요 모독입니다. 살인죄는 계획적인 살인(출 21:12, 14)뿐만 아니라 부주의로 인한 살인(출 21:13, 신 19:5, 22:8)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도 살인죄에 해당됩니다. 같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 살인은, 그 공동체의 평화와 질서를 파괴하기 때문에 절대 금지되어야 합니다.
① 남의 생명을 살해하지 말라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 손으로 죽이는 것입니다.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은 사울의 군장 아브넬과 압살롬의 군장 아마사를 죽일 때 칼로 배를 찔러 죽었습니다(삼하 3:27, 20:10).
• 마음으로 죽이는 것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악한 마음, 곧 살기(殺氣)를 품은 자는 이미 살인자입니다.
• 혀로 죽이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혀로써 거짓 증언하여 예수님을 죽였습니다(마 26:59-62, 막 14:55-60, 요 18:29-30).
• 붓으로 죽이는 것입니다.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글로써 그의 충신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도록 지시했으며, 그에 따라 요압은 우리아를 전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지경에 몰아넣어 죽게 하였습니다(삼하 11:14-17).
• 음모(陰謨)로써 죽이는 것입니다. 사울은 “내 손을 그에게 대지 말고 블레셋 사람의 손으로 그에게 대게 하리라”라고 하며, 다윗을 블레셋 사람들을 통해 죽게 하려고 했습니다(삼상 18:17下). 헤롯은 동방 박사들을 가만히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묻는가 하면, 그들을 보내면서 ‘그리스도를 찾거든 보고해 달라’라고 하며, 겉으로는 그리스도에게 경배하기 위함인 척했으나(마 2:7-8) 속으로는 살인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마 2:16).
• 남을 죽이는 데 동의(同意)해서 죽이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순교의 피를 흘릴 때, 사울이 그 곁에서 스데반을 죽이는 사람들 편이 되어 그들의 옷을 맡아 주었습니다(행 7:54-60, 8:1上, 22:20).
• 권세로 죽이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권세 있는 자리에 앉아 있을 때, 예수님의 무죄를 확인하고(마 27:17-18, 눅 23:4, 14-15, 요 18:38, 19:4, 6), 또 자기 아내의 꿈을 통하여 예수님의 의로움을 누차 확인했으면서도(마 27:19), 예수님을 죽는 자리에 내어주고 말았습니다(눅 23:22-25, 요 18:31, 19:10-16).
• 무정(無情)함으로 죽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강도를 만난 사람이 거반 죽어가는 상황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를 보기만 하고 피하여 지나갔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벌써 살인죄를 범한 것입니다(눅 10:30-32, 참고-롬 1:31)
• 태아(胎兒)를 낙태 시키는 것은 명백한 살인입니다. 최근 가족계획의 일환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뱃속에서 제하여 버리는 낙태가 성행하는데, 이는 분명코 살인죄요, 그것을 돕는 행위도 살인죄에 해당합니다(참고-욥 3:16, 전 6:3-4). 태중에 있는 아이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귀중한 생명입니다(사 44:2, 렘 1:5, 참고-창 25:23, 눅 1:41, 44).
② 자기 생명을 살해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는 금령 속에는 자기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해하면 안 된다는 내용도 포함됩니다.
첫째, 간접적으로 자기를 살해하는 것입니다.
세상 근심과 걱정과 염려에 얽매이는 일입니다. 고린도후서 7:10에서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염려는 자기를 찔러 죽이는 가시와도 같습니다. 잘못된 염려는 온갖 질병의 촉매제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 버리고 했습니다(벧전 5:7). 염려는 생명 자체를 주신 주님을 불신앙하는 죄입니다(마 6:25). 우리 성도에게는 오직 교회 안에 있는 지체를 향한 서로의 염려(고전 12:12-27), 교회를 위한 염려(고후 7:10-11, 11:28-29),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고후 7:10上)뿐입니다. 또한 시기가 자신을 죽이는 원인입니다. 시기(猜忌: 샘할 시, 꺼릴 기)는 ‘샘을 내서 미워함’이란 뜻입니다. 시기는 뼈를 썩게 함으로 자신을 죽이는 무서운 독입니다(욥 5:2, 잠 14:30, 약 3:14).
둘째, 자기 생명을 직접 살해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자기 생애를 비관하여 스스로 생명을 끊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자살 공화국’으로 불릴 만큼, 8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심각한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10대, 20대, 30대의 사망 원인 중 자살이 제 1위이며, 고학력자들의 자살률이 매년 늘고, 노인층 자살률(2.6배)도 월등히 높습니다. 자살 원인은 정신적 문제(29.5%)가 가장 크고, 질병(23.3%), 경제적 어려움(15.7%), 인간 관계(15%) 등입니다(경찰청통계). 원인을 파악하기 어려운 자살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자살한 자들이 있습니다(삼상 31:1-4, 삼하 15:12, 삼하 17:23, 왕상 16:18, 마 26:15-16, 27:5, 행 1:18).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길을 간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자살의 심각성은 누구나 공감하는 문제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느 때보다 중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경적인 생명관을 정립하여 생명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자살은 없어질 것입니다.
2. 제 6계명의 세부 율법
“살인하지 말지니라”(출 20:13, 신 5:17)라는 제 6계명의 세부 율법은 출애굽기 21:12-14, 18-36, 23:4과 신명기 19:1-22:8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라는 제 6계명의 경우, 다른 계명에 비해 그 세부 율법의 분량이 월등히 많음을 유의해야 합니다(총 96절). 이는 다른 계명과 달리 생명과 직결되어 있어 그 중요성이 크고, 살인이 움트는 뿌리까지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자비로운 규정을 많이 정해 놓으셨음을 의미합니다.
(1) 계획적 살인과 과실치사(출 21:12-14, 18-36)
계획적으로 살인한 자는 반드시 사형에 해당합니다(출 21:12, 14). 그러나 계획적이 아닌 경우,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 곳으로 도망갈 수 있도록 예외 규정을 두었습니다(출 21:13). 또한 이웃에게 신체상의 손상을 입힌 경우(출 21:18-32), 재산상의 손해를 입힌 경우(출 21:33-36)로 나누어 처벌하였습니다.
(2)우발적 살인에 대한 구제와 이웃 사랑의 명령(출 23:4-5, 신 19:1-22:8)
① 도피성을 두어 무고한 생명을 보호하라(신 19:1-13)
하나님께서는 도피성 제도를 두어 무고한 생명을 보호를 받도록 하셨습니다. 아무런 고의성 없이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자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여, 피의 보수자로부터 그 생명을 지킬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신 19:1-13).
② 이웃의 경계표(지계표)를 옮기지 말라(신 19:14)
율법에는 ‘지계표를 옮기지 말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신 27:17). 지계표(地界標, boundary stone)는 한 개인의 소유권이나 지역·국가 사이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세운 돌기둥으로, 그것을 이동하는 것은 이웃 소유의 땅을 빼앗는 큰 범죄였습니다(욥 24:2, 잠 22:28, 23:10, 호 5:10, 참고-사 5:8). 이는 이웃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소유물을 빼앗지 않도록 하신 규정입니다.
③ 이웃이 위험에 처할 요소를 제거하라(신 22:8)
하나님께서는 이웃을 배려하여 “새 집을 건축할 때에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사람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라”(신 2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흘린 피가 네 집에 돌아갈 수 있다고 경고하셨습니다(신 22:8下). 이웃의 생명을 존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세심하게 배려하게 하신 사랑의 율법입니다.
④ 이웃에게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라(출 23:4-5, 신 22:1-4)
하나님께서는 이웃의 우양이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반드시 끌어다가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말씀하십니다(신 22:1). 이는 그 이웃이 그의 소유를 잃어버렸을 때, 그것을 찾을 때까지 적극적으로 책임을 지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와 그 외의 여러 가지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상세히 알려 주셨습니다(신 22:2, 출 23:4, 신 22:1-2, 출 23:4-5, 신 22:3-4).
⑤ 자연을 훼손하지 말라(신 20:19-20)
살인을 사람을 죽이는 것뿐만 아니라 자연의 훼손까지도 해당합니다. 자연의 훼손은 곧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므로 간접적인 살인에 해당합니다. 신명기 20:19-20에서 “너희가 어느 성읍을 오래 동안 에워싸고 쳐서 취하려 할 때에도 도끼를 둘러 그곳의 나무를 작벌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먹을 것이 될 것임이니 찍지 말라 밭의 수목이 사람이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에워싸겠느냐 오직 과목이 아닌 줄로 아는 수목은 작벌하여 너희와 싸우는 그 성읍을 치는 기구를 만들어 그 성읍을 함락시킬 때까지 쓸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수목의 열매를 먹고 살며, 삼림은 인간에게 많은 유익을 주기 때문에, 수목은 곧 사람의 생명과 직결됩니다. 그러므로 삼림은 인간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하니 ‘함부로 자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3. 살인 개념의 복음적 확대
(1)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살인의 종류(마 5:21-22)
① 형제에게 노하는 것입니다.
“노하는”은 헬라어 ‘오르기조’인데, ‘격분하다, 화를 내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악의를 가지고 남을 해치고자 하는 지속적인 분노’를 가리킵니다. 남을 미워하고 억울하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의 피를 흘리는 살인죄입니다(요일 3:15). 직접 피를 흘리게 한 것은 아니더라도 이웃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하면, 이것 역시 피 흘린 살인과 같은 것입니다. 미움이나 분노는 살인까지 연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동생 요셉을 미워하였는데(창 37:4), 요셉이 꿈 얘기를 들려주자 더욱 미워하였고(창 37:5, 8), 두 번째 꿈 얘기를 또 들려주었을 때는 시기하였으며(창 37:11), 결국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창 37:18).
② 인격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당시에 ‘라가’(라카)라는 단어는 ‘멍청한 자, 머리가 텅 빈 자’라는 뜻의 욕설로, 상대방의 인격을 모독하는 말이며, 예수님께서는 이것도 살인으로 규정하셨습니다. 이는 말로써 사람을 죽이는 일입니다. 혀로는 속이고 입술로는 독사 같은 독을 품고(롬 3:13),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합니다(롬 3:14). 심지어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더 빨라서 무죄한 자를 죽이기까지 합니다(롬 3:15, 사 59:7). ‘선량한 혀’는 잘 쓰면 아픔을 낫게 하는 양약이요(잠 12:18), 사람의 마음을 기쁘고 유쾌하게 하지만(잠 15:23, 23:16, 27:9), ‘불량한 혀’는 사람을 죽이는 칼이요, 독이며(시 59:7, 64:3, 약 3:8), 인생을 송두리째 망칠 수 있는 거센 불길입니다(잠 16:27, 약 3:6).
③ 하나님 자리에서 정죄하는 것입니다.
‘미련한 놈’은 헬라어 ‘모로스’이며 ‘신앙심이 없는, 불신하는’이라는 뜻으로, 당시에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를 가리키는 표현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상대방을 ‘심판받을 자’로 함부로 정죄하는 것입니다(참고-딤후 2:23).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사람을 정죄하는 자들을 ‘살인자’로 선포하셨습니다.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것은 사람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남의 믿음을 함부로 정죄하는 것은 살인죄가 될 수 있습니다.
(2) 살인죄를 막는 비결
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살인하지 말라”라는 말씀은 ‘자기 생명뿐 아니라 남의 생명도 보존되도록 최선을 다하라’라는 명령을 포함합니다. 이렇게 살면 분명 우리 주변에 살인죄는 없어질 것입니다. 남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자기 유익보다는 남의 유익을 구하는 생활입니다.
② 성내기를 더디하라
분노하면 주의력과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려 자기 자신을 제어할 수가 없게 되고, 이성 없는 짐승과 같이 되어 판단을 그르치게 됩니다. 창세기 49:6 하반절에서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깊으신 은혜의 경륜을 기다릴 새 없이 너무 성급하게 분노하면 화를 자초하고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③ ‘먼저’ 화목하라, ‘급히’ 사화(私和)하라
예수님께서는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23-24). 그리고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私和)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마 5:2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에게 단 한 번도 분노하지 않으셨으며, 회개시키려고 누누이 타이르셨습니다. 참으로 인간의 생각으로서는 도저히 헤아리기 어려운, 바다보다 깊고 하늘보다 넓은 사랑의 마음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향해서 계속적인 용서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눅 23:34). 끝까지 화목의 중보자로서(엡 2:11-18), 하나님과 온 세상을 화목케 하는 제물이 되셨습니다(롬 3:25, 요일 2:2).
4. 제 6계명을 범한 자의 최후
신구약 성경에는 살벌하고 끔찍한 살인 사건이 많이 나옵니다(창 4:8, 창 4:23-24, 출 1:15-16, 22, 삿 8:30-31, 9:5, 삼상 22:18-19, 삼하 3:27, 삼하 20:10, 삼하 11:1-17, 26-27, 삼하 13:28, 왕상 21:7-15, 왕하 8:15, 왕하 11:1-3, 대하 22:10-12, 마 2:16, 마 14:6-11, 막 6:16-28, 마 26:59-68, 27:15-26, 요 19:14-16, 행 13:27-28, 행 7:57-60, 행 12:1-2). 이 가운데 아담의 첫아들이자 첫 살인자 가인의 살인 사건과 분열왕국 시대의 아합과 이세벨 부부의 살인 사건을 살펴보겠습니다.
(1) 의로운 아벨을 쳐죽인 살인자, ‘가인’
하나님께서 아벨과 아벨의 제물은 열납하시고, 가인과 가인의 제물은 열납하지 않으셨을 때, 가인은 대단히 화가 났습니다(창 4:3-5). 창 4:6을 강신택 박사는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왜 너에게 화냄이 있느냐? 그리고 왜 너의 얼굴들은 (땅으로) 떨어졌느냐?”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찾아오셔서 그 마음속에 있는 죄의 불씨, ‘죄의 소원’을 다스리도록 간곡하게 권면해 주셨습니다(창 4:7). 그러나 가인은 동생 아벨을 들로 유인하여 계획적으로 은밀하게 쳐죽이고 말았습니다(창 4:8). 이에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으나, 가인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창 4:9). 그러나 땅이 그 입을 벌려 아벨의 피를 받아,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하나님 앞에 호소하였습니다(창 4:10-11).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창 4:12)라고 형벌을 내리셨습니다.
(2) 선한 나봇을 쳐죽인 살인자, ‘아합과 이세벨’
북 이스라엘 아합 왕과 그의 아내 이세벨은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해 나봇을 죽이고, ‘지계표’를 옮긴 악한 자들입니다(참고-욥 24:2, 잠 22:28, 23:10, 사 5:8, 호 5:10). 아합의 아내 이세벨은 가증스러운 조작극을 꾸며, 무죄한 나봇을 ‘하나님과 왕을 저주한 자’라고 모함하여 성 밖에서 돌로 쳐 죽게 하였습니다. 나봇이 죽자 아합은 그 포도원을 취하러 내려갔습니다(왕상 21:5-16). 이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왕상 21:19下)라고 하여, 아합과 그 자손이 비참하게 죽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왕상 21:17-29).
5. 제 6계명의 구속사적 교훈
아담은 에덴 동산에서 제 6계명을 범하는 것과 같은 죄를 지었습니다. 여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자기만 먹은 것이 아니라 남편도 먹게 하여 남편을 죽게 만들었습니다(창 3:6下). 아담은 온 인류의 대표인데, 그 아담이 행위 언약을 어겼으므로 온 인류에게 사망이 찾아왔습니다(롬 5:12, 14, 6:23).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8:37에서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것은 곧 예수님을 죽이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요 7:19). 예수님의 말씀대로 결국, 살인자 마귀의 조종을 받은 종교 지도자들은(요 8:44) 예수님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살인자들을 위해서도 십자가 상에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용서의 기도를 하셨습니다(눅 23:34).
오늘도 신앙 공동체 안에서 남을 미워하고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남을 죽이는 일이 됩니다(요일 3:15).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므로, 말을 조심해서 해야 합니다(잠 18:20-21, 약 3:8). 진실을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남을 판단하여 정죄하며 그것을 악의적으로 퍼뜨리는 것은 심각한 죄악입니다(마 12:36-37, 롬 2:1).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고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벧전 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