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네사렛 사람들 (마 14:34-36)
‘게네사렛’이란 지명은 ‘열풍’, ‘열(熱) 동산’ 등의 뜻이 있습니다. 이곳은 갈릴리 호수 북쪽의 지대이고 예수님의 갈릴리 전도의 거점이 되었던 곳으로, 갈릴리 바다의 별칭입니다. 특별히 본문에서 이 지명이 거론된 것은 게네사렛 사람들의 독특한 믿음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셨을 때 바로 예수를 알아보고 근방에 이 소식을 두루 통치하여 믿음으로 나아온 사람들이 바로 게네사렛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공생애 동안 활동하신 지역 중에서 특별히 게네사렛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많은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게네사렛 사람들의 믿음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1. 게네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봤습니다.
본문 35절에 보면 “그곳 사람들이 예수신 줄을 알고”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존재와 사역을 알아보았다는 뜻입니다. (마 16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답변을 보면, “더러는 세례 요한,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했습니다. 어느 사람도 정확히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오직 베드로만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게네사렛 사람들이 예수를 알아봤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앙에는 3단계가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 가장 중요한 것은 ‘아는 단계’입니다. 이를 결혼 관계로 비유하면, 처음 소개를 받아 인사를 나누고 교제를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그러나 아는 단계만으로는 부족하고, 두 번째 단계로 ‘믿는 단계’가 필요합니다. 이 단계에 들어서야 신뢰와 사랑이 성립됩니다. 이 단계를 거치면, 마지막으로 피차에 믿고 맡기는 헌신의 단계가 필요합니다. 이 단계에 들어서야 사명도 감당할 수 있고 성숙한 신앙에 이르게 됩니다. 게네사렛 사람들은 신앙의 첫 단추를 정확하게 끼웠던 것입니다.
2. 게넷사렛 사람들은 예수에 관한 소문을 두루 통지했습니다.
본문 35절에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라는 말이 나옵니다. (막 6:55)에도,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다니며 예수께서 어디서 계시다는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째로 메고 나아오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게네사렛 사람들의 특징은 이처럼 온 지방으로 돌아다니며 예수에 관한 소식을 전달했습니다. 두루 통지했다는 말은 널리 알렸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알렸습니까?
첫째는, 예수님이 오신 소문을 전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전도입니다. 전도자가 알릴 것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사람을 전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알리는 것이 생명의 전도입니다. (요 4장)에서, 수가성 여인이 사마리아에 예수에 관한 소문을 퍼뜨린 결과로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요 4:42) 볼 때,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라고 사마리아 사람들이 수가성 여인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내가 말을 잘 하거나 나의 설득력으로 인함이 아닙니다. 예수 때문에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예수에 관한 소식을 두루 통지함으로써 사람들이 그분께 나아오도록 하면 됩니다.
둘째로, 전도자가 알려야 할 또 다른 사실은 교회를 알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를 통해 복음을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교회는 당신의 몸입니다 (엡 4:12). 그러므로 교회를 귀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귀히 여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교회를 정성껏 섬기는 것은 주님을 정성껏 모시고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며 피로 사신 귀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3. 게네사렛 사람들은 병자들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게 했습니다.
게네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 수많은 사람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믿음으로 예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게 했습니다. 단순히 병자들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알리고 통지한 것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직접 예수께로 데리고 왔습니다. 끝까지 책임지는 게네사렛 사람들의 열정과 정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이웃이나 친구에게 베풀 수 있는 여러 가지 친절이 있을 수 있지만, 최상의 친절과 봉사는 주변의 가족이나 친구들을 예수께로 데리고 나오는 것입니다. 생명과 구원의 향연에 그들을 초청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예수께로 데리고 와야 할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들에게 게네사렛 사람들처럼 예수를 알리고, 전하고, 눈물 흘리면서 사명감을 가지고 데리고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 앞에 나아온 게네사렛 사람들은 놀라운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기만 하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마 9:19-21) 말씀을 볼 때,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도 믿음으로 예수의 옷자락을 만질 때 나음을 입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고 분명히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는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아마 문제 없는 사람들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를 대하고 그 문제를 푸는 방법에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의 옷자락에 손을 대는 믿음이 모자란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부족합니다. 간절함이 없고, 인내가 모자랍니다. 손을 대는 자는 다 고침 받았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만 있다면 우리도 게네사렛 사람들처럼 다 나음을 입을 수 있습니다.
결 론
게네사렛 사람들에게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고, 두루 통지하여 알리고 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예수께로 인도하는 게네사렛 사람들! 오늘 우리 시대에 예수께서 자신 있게 권하고 싶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