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예비하자 (마 24:37-44, 25:1-13)
마태복음 24장과 25장은 내용으로 볼 때 요한계시록의 축소판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만큼 담고 있는 내용이 요한계시록과 같이 종말에 될 현상을 계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세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취할 삶의 태도를 알려 주시기 위해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깨어 예비하고 있으라’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예비’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미리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특별히 마 24장에서는 깨어 예비하는 참신앙의 인물로 ‘노아’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인자의 임함은 노아의 때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노아 당시의 죄악상과 노아의 믿음을 상고해 보는 가운데, 늘 깨어 예비하는 승리적인 신앙의 원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인자의 임함은 노아의 때와 같습니다.
‘인자의 임함이 노아의 때와 같다’는 말은 ‘종말의 때나 노아의 때나 그 죄악에 있어서 유사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노아의 때의 죄악상은 육체의 타락에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간의 결혼을 말합니다. 성경은 분명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혼인을 금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의 결혼을 금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아의 때에는 자신들의 육체적인 욕망에 이끌려 마음대로 결혼함으로써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사람은 결국 ‘육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고전 15:50)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기에(롬 8:6),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홍수를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한 결과로 이 땅에는 ‘네피림’이 등장하였습니다. 네피림은 ‘유명한 용사’로서 ‘거인’을 지칭하는 말입니다(창 6:4). 육신적으로 기골이 장대하고,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죄악을 짓는 죄악의 용사가 바로 네피림입니다. 민 13:33에서 이 네피림 후손을 가리켜 ‘아낙 자손 대장부들’이라 하였는데, 이들은 가나안 7족속 가운데서도 ‘대장부’라 불릴 정도로 체격이 크고 용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노아 당시는 죄악의 씨앗인 네피림이 장악하고 활개 치는 사회였습니다. 육체가 아니면 통하지 않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사회였습니다. 하나님께 도전하며 당당하게 죄악 가운데 살아가는 자가 인기를 얻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노아만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드는 생활을 했습니다. 죄악이 관영하여 사회 구석구석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이 차고 넘치는 사회였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눈에 들어 방주를 예비할 수 있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노아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눅 17:26). 이 말씀은, 종말의 때에도 노아의 때처럼 죄악이 관영하지만 하나님께 은혜를 입고 깨어 있는 자는 심판 가운데서도 건짐을 받는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심판 중에도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예비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2. 오늘날에도 신령한 믿음의 방주 운동이 있어야 합니다.
죄악이 관영한 세대 가운데서 구원을 얻은 노아와 같은 축복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노아의 사적을 연구해야 합니다. 노아는 홍수가 시작되기 7일 전에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노아 600세 되던 2월 10일 날 계시를 받아, 17일부터 비가 쏟아졌습니다. 40주야 비가 내림과 동시에 방주가 150일 떠다녔으며(창 8:4), 물이 줄어들고 빠지는 데 다시 150일이 걸렸습니다(창 8:3-13). 그때에 방주의 뚜껑을 열었습니다(창 8:13). 그리고, 물이 걷히고 땅이 마르는 데는 57일이 걸렸으며, 그때가 노아 601세 2월 27일이었습니다(창 8:13-14). 그러므로 노아와 그 식구들이 방주 안에서 생활한 기간이 377일이 됩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이 홍수로 멸망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방주를 예비해서 자기와 자기 식구들을 구원한 것입니다(히 11:7). 심판의 물이 온 땅에 창일했지만, 노아와 그 식구들은 미리 준비한 방주에 들어가 있었으니 그 방주가 물 위에 떠오른 후 물 위를 떠다녔습니다(창 7:17-18). 땅 위에 코로 호흡하는 모든 생물이 멸절당하고 땅 위의 모든 것이 수장당하는 와중에도, 노아와 그 가족은 실은 방주는 물 위에 떠올라 운행하였습니다. 창 7:23에서는 “지면의 모든 생물…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방주 운동은, 아무리 죄악이 관영하다 해도 신령한 방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가운데 죄악을 이기는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창 8:16-19 말씀을 볼 때, 홍수 심판이 끝난 후에 노아와 함께했던 모든 가족과 동물들이 방주에서 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홍수 심판의 시작과 진행과 마침이 오직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제일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창 8:20). 하나님은 그 제사를 흠향하시고(창8:21), 창세기 9장에서 무지개 언약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방주 운동을 하는 참성도의 신앙 자세입니다. 그러한 성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말씀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결 론 : 세상에 아무리 죄악이 관영하다 해도, 노아처럼 깨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목하는 성도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죄악과 싸워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느헤미야 선지자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이 한 손에는 창을, 다른 한 손에는 망치를 들고 성전 건축의 역사를 마쳤던 것과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죄악과 싸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전 건축이라고 하는 신앙의 길을 중단 없이 달려가는 것–이것이 바로 깨어 예비하는 참된 신앙인의 모습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