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가도 하나님은 여전히 (창 47:7-10, 48:21, 히 1:10-12)
이 땅에서 사람의 삶이란 야곱의 고백처럼 ‘나그네 인생’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위대했던 사람의 삶도 흐르는 강물처럼 한 점 자취도 없이 사라져 가고 마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창 48:21에서 야곱은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인생은 가더라도 하나님은 여전하시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고백처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까지 동일하신” 하나님입니다. 야곱이나 요셉은 그러한 하나님을 깨닫고 만났기에 평안하고 담대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역사는 절대 머무름이 없습니다.
본문 히 1:12에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전히’라는 말은 전과 다름이 없다는 뜻으로,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시고, 영원히 늙지 않으시고,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으시기 때문에 죽음이 없는 분임을 나타내 주는 말입니다. 야고보 또한 하나님을 가리켜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분’(약 1:17)이라 하였습니다.
히브리 기자도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고 하였고(히 13:8), 사도 요한도 하나님을 가리켜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계 1:8). 이처럼 성경이 묘사하고 있는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까지도 동일하시고 영원하신 분으로, 잠시도 중단이나 쉼이 없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깨달았기 때문에, 야곱이나 요셉은 임종 시에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한 가운데 자손들에게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책임지신다’며 오히려 위로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창 48:21, 50:24).
2. “나는 죽으나”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야곱과 요셉이 임종 시에 남긴 “나는 죽으나”–이 말은 인생이 유한한 피조물임을 깨닫고 믿음으로 고백한 말입니다. 이 말이 담고 있는 의미는, 인생은 시간과 공간에 있어서 유한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세포가 죽어 가고 인생이 끝나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고전 7:31 말씀과 같이,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 인생의 최후 앞에서 자신 역시 인간인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당위의 법칙을 깨닫고 마땅히 하나님의 법에 순종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 야곱은 멈추는 한 날이 다가온다 해도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움직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이나 요셉 등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 자신을 붙잡고 살겠다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또한, 그들이 만난 하나님은 영존하시는 하나님, 계약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어김없이, 여전히, 똑같이 나를 쳐다보고, 붙잡아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늘 마음에 만족하도록 도와주시는 하나님! 날마다의 삶 속에서 그러한 하나님을 만나고 동행하였기에, 야곱은 하나님을 가리켜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이라 하였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체험하고 보니 그 하나님을 붙잡고, 그 하나님을 자손들에게 남기고자 했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녀들을 모아 놓고 “나 죽으면 어떻게 살래…” 하면서 본인도 울고 자녀들도 함께 우는 장면들을 흔히 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등 믿음의 선진들은 참 놀라운 미래의 비전을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인간 요셉은 죽어도 하나님의 섭리는 그것으로 인하여 정지되거나 포기되지 않는다는 신앙! 인간 지도자는 죽어도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하나님은 끝까지 책임지고 앞장서서 너희들을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 믿음의 선진들의 신앙이요, 또 우리들의 신앙이 되어야겠습니다.
3. “나는 죽으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십니다.
창 50:24-25에서 요셉은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사 …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면서, ‘하나님께서 권고하실 테니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고 유언하였습니다. 죽는 순간까지도 요셉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자신과 후손들을 인도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요셉과 믿음의 선진들의 믿음은 벌써 출애굽의 역사를 체험하는 축복을 누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임종 순간에도 400여 년 뒤를 미리 내다보며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당당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신앙의 조상들은 벌써 애굽의 탈출을 믿음으로 체험한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광야 교회의 이적을 믿음으로 맛보고 살았습니다. 새 가나안 땅에 씨를 뿌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따 먹는 그러한 체험을, 믿음의 눈으로 마음속에서 미리 체험하였던 것입니다.
끝으로, 역사는 다시 흐르고 섭리는 계속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이나 요셉도 땅의 생애는 끝났습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장차 모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실 것을 미리 내다본 것입니다. 그래서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결 론
임종을 앞둔 야곱이나 요셉의 태도는 너무도 태연자약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너무나도 천연스럽게 미소를 지으면서 임종을 맞이했습니다. 그 저변에는 ‘나는 죽으나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그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는 신앙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역대 믿음의 조상들은 체념이나 슬픈 빛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가장 평온한 모습으로 자녀들을 둘러보며 ‘나는 죽으나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책임져 주신다’고 축복해 주었던 것입니다.